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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금강을 가로지르는 목교가 1920년 붕괴된 이후, 동년 곧바로 대체 다리로 배다리를 가설했다. 배 26척을 묶고 그 위에 상판을 올려 사람과 물산이 오가도록 했는데, 길이가 175m이고 폭은 3m였다. 하루에 오전과 오후 2시간씩 연결된 배를 풀어 나룻배가 통과할…
1910년대 후반에서 1920년대 초반경, 미선교사 가옥과 공주시가지의 모습이다. 제민천 하류는 개간이 되었으며, 지금의 중동 부근에 시가지가 정비되고 시장이 개설된 모습이다.
공주공립중학교의 본관 건물이다. 1938년 제3차 교육령에 따라 공주공립고등보통학교는 공주공립중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본 자료는 일제강점기 '사적의 공주'라는 시리즈 엽서로 발행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여름의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서 영명남학교의 교사이다. 영명학교 교장 우리암(F.E.C. Williams) 선교사의 끈질긴 지원 요청으로 미국 감리회는 해외 선교 100년 기념사업으로서 영명학교 지원을 포함시켜 1921년 10월 3층 양옥 벽돌 구조의…
일제강점기 충남도청 맞은편(現 KT&G)에 위치해있던 헌병수비대의 모습이다. 수비대에서 복무하던 병사의 모습과 주변 가옥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헌병수비대는 순사(경찰)교습소로 활용되었는데, 대한제국 시절부터 공주와 홍주, 대전지역 경찰서에 배치될 순검을 채용하기…
일제강점기 마곡사 앞을 흐르는 희지천에서 바라본 마곡사 전경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경내로 들어가는 다리는 난간도 없는 나즈막한 돌다리이며, 경전 주변에는 돌담장이 둘러있다.
1910년대 말경, 현재의 봉황산 정상부근에서 공주 시가지의 동편을 바라본 모습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앵산공원'이라 불렸는데, 미국 선교사가 감리교 선교를 위해 명선여학당을 시작으로 충남 최초의 사립학교인 영명학당을 세워 현재의 영명중고등학교로 맥을 이어오고 있는…
1910년대 말경, 봉황산 아래 위치한 충남도청 중심의 공주 시가지 모습이다. 엽서에는 당대의 인물이 작성한 수비대와 도청, 법원, 이름난 요정 등 주요명소와 함께 '앵산공원에서 공주를 바라보며'라는 친필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공주우편국에서 사용한 인지의 한 종류로 공주의 풍경을 배경으로 제작된 두 종류의 풍경인 중 전기버전이다. 풍경인 내에는 충혼비와 금강, 배다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공주군 우성면 단지리에서 출생하고 동면 동대리로 주소를 이전한 김상진의 호적등본이다. 전(前) 호주로 김상진의 아버지인 김칠봉(金七奉)이 기재되어있고, 어머니 김단연(金丹然), 처(妻) 이창분(李昌分), 자녀들 그리고 손자들까지 등록되어있다. 해당 인물들의 출생연도와…
1916년에 공주군 장기면(長技面) 도계리(道溪里)에 사는 최희찬(崔喜燦)이 자신의 선조인 최중경(崔仲慶)의 분묘를 조성하고자 관부에 신고한 묘적계 문서이다. 제출서는 공주경찰서장 경부 장사정태(庄司政太)이다. 문서에는 최중경의 사망연월일과 제주의 주소, 성명이…
1946년 공주읍에서 발행한 수도세에 대한 납세영수증이다. 문서번호는 제110호, 수취인은 최선영(崔善英)이다. 표에 기재된 내용을 통해 2월분의 수도세에 대한 고지서 이며 납부액은 20원임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발행날짜는 알 수 없지만, 발행인은 공주읍사무소의…
1946년 3월 10일 공주읍사무소에서 발행한 수도세 납세고지서이다. 문서번호는 제110호, 수취인은 최선영(崔善英)이다. 표에 기재된 내용을 통해 2월분의 수도세에 대한 고지서 이며 금액은 20원임을 알 수 있다. 납부기한은 1946년 3월 15일까지이며 공주읍장…
일제강점기 공주지방법원에서 발행한 민사소송 개정에 대한 유의사항 안내문이다.
일제강점기 공주우편국에서 사용한 인지의 한 종류로 공주의 풍경을 배경으로 제작된 두 종류의 풍경인 중 후기버전이다.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새마을운동 당시 사곡면 화월 1리 마을 내 회의록이다.
공주교대부속 국민학교 시절을 배경으로 제작된 엽서이다.
1920년대 초반 제민천 하류에 있던 버드나무 군락지의 모습이다. 멀리 유교(柳橋)가 보이는데, 현 중동 큰 사거리와 연결된 교촌교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현재의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과 배다리의 모습이다. 멀리 쌍신동의 정안천 제방과 연미산 능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교가 가설된 1920년부터 금강교가 가설되기 전인 1933년 이전의 모습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