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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3건 선박
1957학년도 공주고등학교 졸업반 학생 중 일부가 금강교 남단에 정박한 한 나룻배 위에 올라 촬영한 졸업사진이다. 금강교는 1956.09.29에 복구공사 준공식을 거행되는데, 학생들의 짧은 복장과 학생 뒷편의 금강을 오가는 나룻배에 많은 인파가 탑승한 점으로 보아…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 금강교의 모습으로 철교 아래 나루터 부근에서 찍은 것이다.
1955년 공주사범학교 남자2회, 여자5회 졸업엘범에 수록된 사진이다. 단절된 금강교를 배경으로 배에 탑승한 재학생의 모습이다.
1915년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철도국에서 발행한 에 수록된 갑사와 금강 그리고 조선의 풍속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본 자료에는 갑사와 금강을 충청도 부근의 명소로 소개하고 있다.
1911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에 수록된 부강에서 공주를 오가는 연락선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1968년 보룡초등학교 제2회 졸업앨범에서 발췌한 사진으로 당시 금강교 남단에 위치한 선착장의 정박한 선박 모습이다.
1910년대 말에서 20년대 초 충청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일본인 화가 세가야(世外)가 그린 공산성과 배다리의 모습이다.
공주농업고등학교 ~1957년도 재학생 졸업앨범에 수록된 사진으로 1956년 금강철교 복구공사 준공 이전에 나룻배를 타고 금강을 오가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대형버스도 금강을 건너기 위해 위태로운 나룻배에 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버스로 인해 나룻배가 오른편으로…
공주농업고등학교 1957년도 재학생 졸업앨범에 수록된 사진으로 1956년 금강교 복구공사 준공 직전에 나룻배를 타고 금강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수많은 인파와 물건들이 작은 나룻배를 기다리고 순서대로 탑승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공주농업고등학교 1957년도 재학생 졸업앨범에 수록된 사진으로 공주농업고등학교 상공에서 금강의 풍광을 촬영한 것이다. 당시 전후 막 복구된 금강철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금강 위 나룻배로 추정되는 선박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지금과 다른 당시 전막…
일제강점기 범람한 제민천 하류에서 바라본 공주시가지 모습이다. 범람지 위쪽으로 공주 갑부 김갑순이 건립한 사설시장과 봉황산 아래 공주지방법원을 비록하여 시가지의 모습이 잘 보인다. 무엇보다 금강이 범람하여 강물이 산성정의 시장 근처까지 차올라 배가 드나드는 모습을 볼…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17년 무렵 홍수로 제민천 하류가 물에 잠겼을 때, 금강의 나룻배가 드나들던 모습으로 추정되는 사진그림엽서이다. 엽서 왼쪽 정지산과 오른쪽에 공산성, 하얀색의 석유창고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10년대 초반 공산성 공북루 앞 산성나루터를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북루와 지금의 전막부근을 오가는 나루터는 흔히 산성나루로 불렸는데, 엽서 속에서는 '쌍수산성 제2도장(渡場)'이라 표기하여 공산성에는 여러 개의 나루터가 있었음을 알 수…
공주 금강을 가로지르는 목교가 1920년 붕괴된 이후, 동년 곧바로 대체 다리로 배다리를 가설했다. 배 26척을 묶고 그 위에 상판을 올려 사람과 물산이 오가도록 했는데, 길이가 175m이고 폭은 3m였다. 하루에 오전과 오후 2시간씩 연결된 배를 풀어 나룻배가 통과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