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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에 영명중학교에서 발행한 졸업장이다.
무령왕 탄생 기념비 건립 계획을 검토하여 문제점을 적은 문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기념비 비문의 문제
2. 기념비의 부속문 초안
3. 기념비의 외양
4. 탄생기념 조형물
5. 역사개요 및 한일 참여자 명단석
6. 정리
7. 결론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기증자가 여러 책에서 발췌하여 엮은 것이다. 백제사료집, 일본서기 하, 대동지지, 조선지지략 1, 조선성곽일람의 일부 복사본이다.
계룡국민학교 제61회 졸업생 오현숙님의 졸업장이다. 본교 6개년 과정을 졸업하여 수여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서기1983년 2월 15일자로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하였다.
1986년 공주문화원에서 제4차 특별문화강좌를 개최하며 발송한 초청장이다.
1963.06.27, 공주문화원 주최로 문화원 내에서 진행된 제95회 음악감상회 안내문이다. 감상곡으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과 우리나라 전통음악인 거문고 산조 2곡이 연주되었다. 또한 본 감상회에 참석하기 위해선 20원의 회비를 납부해야했다.
1959년 공주고등학교 학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서로, 2기분 납부금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기재된 납부금은 수업료, 학도호국단, 기성회비 및 사친회비 명목이다.
부여군수가 제 31회 백제문화제 행사를 위하여 백제문화 선양위원회를 개최한다는 공문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
1959년 남궁화가 38세 되던 해에 보령과 공주 일대에서 작성한 보덕일지이다. 무선의 종이에 수기로 선을 그어 일지를 기록하였는데, 앞부분에는 매월일정표를 달력과 함께 기입하고 그 뒤로 하루 일과를 기록하였다. 그 뒤로 부록처럼 인격자 기록, 그 해의 특기사항,…
1958년 공주영명고등학교 제3학년 진영섭 학생의 생활통지표 및 수료증이다. 필수교과 및 교과과정에 따른 성적과 출결상황, 신체발달상황, 행동발달상황 등이 적혀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로, 감영과 본아(목관아), 중군의 관직명이 담겨 있다. 관직명 옆에는 그 인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숫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공주영명중학교 서무과에서 1953년에 발행한 수업료 영수증이다. 영수증에 의하면 청구한 수업료는 4월분으로, 일금 이만칠천원을 청구하였다. 자료 하단에는 영수받은 학생의 성명이 적혀 있다.
1910년대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서 공주시가지를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봉황산 아래 충남도청에서 동서방향으로 난 욱정거리(現 감영길)와 남북으로 흐르는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충남행정의 수부(首府)답게 충남도청과 공주지방재판소(現 공주지방법원), 헌병수비대,…
일제강점기 공주 상반정(現 봉황동 일원) 부근에 위치한 상반여관이다. 당시 공주의 대표적인 여관으로 시찰단 등 주요인사가 머물기도 했다. 엽서 중간에 상반여관 입구의 모습과 측면을 후편집하여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1923년 3월 충남도청 북측으로 설치된 충청남도 평의장이다. 도평의회 또는 도회로 불리던 위 기관은 조선총독부에서 외형상 지방자치를 위해 전국 13도에 설치한 자치의회였다. 충남도평의회는 1920년 10월 처음으로 출범했고, 광복 이후 폐지되었다.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65.02.26, 공주문화원에서 공주의 교육문화 발전을 도모하고자 미 공보원 서울지부의 주선으로 대한교육연합회 방순동 선생을 초빙하여 교육강연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의 문서이다. 공민회관에서 강연이 진행되었고, 방순동 선생이 본 미국의 어린이 생활이 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