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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3건 나루터
한국전쟁으로 단교된 금강교는 1952년 복구를 시작하여 1956년 9월에 재개통하는데, 다리가 복구되기 전까지는 본 자료의 모습과 같이 나룻배를 이용하여 도강했다. 나룻배 앞에 서있는 인물은 제2대 공주문화원 이관용 원장이다.
일제강점기 1910년대 초반경의 공주 금강 산성나루의 모습을 사진그림엽서로 제작한 것이다. 오늘날 금강교 남단 부근에 위치한 나루터는 1915년 금강 목교가 가설되기 이전까지 공주사람이 강의 남과 북을 오가는 중요 교통로 중 하나였다. 이곳과 함께 공북루 앞에서…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54학년도 공주사범대학 졸업앨범에 수록된 사진이다.1950년대 중엽 금강의 고마나루를 오가는 나룻배가 배에 차를 싣고 가고 있다. 사진 속의 마을은 고마나루 건너편 우성면 신웅리인데, 집 아래 왼쪽의 나무가 지금도 존재한다. 금강교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되면서…
오얏골나루터에서 수영하는 모습이다. 오얏골 나루터는 소학동과 무릉동을 잇는 나루터이다.
1968년 보룡초등학교 제2회 졸업앨범에서 발췌한 사진으로 당시 금강교 남단에 위치한 선착장의 정박한 선박 모습이다.
공주시 이인면 운암리에 위치한 놋점나루의 전경이다.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치원에서 공주를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나루터로, 조선시대부터 전라도에서 한양가는 삼남대로 길목에 있는 장기대나루 북단이다. 장기대나루는 옥룡동에서 금강을 건너 시목동(감나무골)로 연결되었던 나루로 장기진(杖基津)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죄인의 목을 장대에…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 금강 주변 나루터에서 촬영한 성처경님의 사진이다. 넓은 백사장과 금강이 휘감아 도는 모습으로 보아 연미산 부근으로 추정된다. 산 아래 나루터에는 여러 배와 사람들이 몰려 있는데, 우성으로 넘어가는 나루터로 추정된다.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10년대 초반 공산성 공북루 앞 산성나루터를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북루와 지금의 전막부근을 오가는 나루터는 흔히 산성나루로 불렸는데, 엽서 속에서는 '쌍수산성 제2도장(渡場)'이라 표기하여 공산성에는 여러 개의 나루터가 있었음을 알 수…
1914년 측량하여 1919년 1회 수정측량한 지도로 좌측에 범례가 기재된 지도이다.
1914년 측량하여 1938년 3회 수정측량한 지도로 좌측에 범례가 기재된 지도이며 이전의 동일 축척의 지도에 비해 변화한 시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금강을 오가는 나룻배와 고기를 잡고 있는 작은 고기배이다. 이 부근은 석장리 부근으로 이 나룻배는 석장리, 마암리, 창벽 등의 부근을 자주 오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