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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702건 금강
일제강점기 공주의 특산품은 버들세공품이었다. 공주를 방문해 매일신보에 기행문을 연재한 富春山人(민태원)은 공주의 명물 4가지로 쌍수산성과 김갑순, 감, 버들세공품을 꼽았다. 주로 제민천 하류와 금강가에 버들이 많았는데, 버들전답이 약 30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1917년 무렵 홍수로 제민천 하류가 물에 잠겼을 때, 금강의 나룻배가 드나들던 모습으로 추정되는 사진그림엽서이다. 엽서 왼쪽 정지산과 오른쪽에 공산성, 하얀색의 석유창고를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치원에서 공주를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나루터로, 조선시대부터 전라도에서 한양가는 삼남대로 길목에 있는 장기대나루 북단이다. 장기대나루는 옥룡동에서 금강을 건너 시목동(감나무골)로 연결되었던 나루로 장기진(杖基津)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죄인의 목을 장대에…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10년대 후반경 공산성 공북루 앞 산성나루 부근에서 바라본 금강의 모습이다. 한 사내가 낚시하는 모습과 강 중간에 떠있는 나룻배, 멀리 목교와 함께 연미산도 보인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공북루와 금강 목교(木橋)의 모습이다. 공주에서 출발하여 조치원과 청주를 잇는 공청가도(公淸街道)가 만들어지고, 공주와 조치원 사이에 근대적인 신작로가 나면서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막에서 공산성으로 건너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나룻배 보다는 언제든…
조선후기 충청병영의 중군영지에 해당하는 이곳은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가 있는 장소이다. 1895년 갑오개혁에 따라 전국의 산성과 군영을 폐지하면서 이곳의 군영 관련시설은 점차 없어졌다. 이후 공주 갑부 김갑순에게 불하되면서 민가와 시장이 들어서 성안마을이 형성되었다.…
일제강점기 금강 위에서 촬영한 공산성 공북루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엽서이다. 엽서의 후면에는 충청남도 공주에서 일본 오사카로 보내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엽서를 보내는 인물이 본 엽서의 사진을 공주의 명소로 설명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30년대 '백제의 구도'시리즈 엽서 중 1930년대 금강교의 모습이다. 충남도청 대전 이전의 보상책으로 1933년 11월 공주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금강교가 완공되었다. 폭 6m, 길이 약 500m 규모로 1년 6개월여의 공사기간이 소요되었다. 금강교 준공식에는 약…
1930년대 '백제의 구도'시리즈 엽서 중 하나로, 지금의 공산정 부근에서 동쪽으로 금강을 바라본 전경이다. 좌측으로 현재의 시목동(감나무골) 일대의 모습이 보이는데, 오늘날과 달리 민가가 들어서지 않았으며, 강안에 넓게 백사장이 펼쳐졌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엽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브랜던 뉴튼이 촬영한 전시 상황 중의 사진이다. 본 자료에는 공주 금강철교가 폭파 된 후 단교된 모습부터 당시 금강의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
1989년 당시 국립지리원에서 촬영한 공주시 석장리 박물관 부근의 항공사진이다.
1989년 당시 국립지리원에서 촬영한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금암리 일원의 항공사진이다. 당시 금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89년 당시 국립지리원에서 촬영한 공주시 우성면 대성리 일원의 항공사진이다. 당시 금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89년 당시 국립지리원에서 촬영한 공주시 검상동 방아달산 부근의 사진이다. 본 자료에 촬영된 당시 금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