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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5년 9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이름을 적고 그…
전 공주교대 총장 및 김영배, 안승주 교수와 함께 무령왕릉 발굴에 참여했던 박용진 님이 작성한 초고이다. 백제의 공주 천도 1500주년을 맞이하여 그 의미와 공주백제의 문화에 대한 글을 작성하였다. 머리말 이후 1. 공주백제시대의 역사 1) 공주백제의 시대개관 2)…
1958년에 발급된 정안국민학교 졸업장이다. 정안초등학교는 1922년 5월 23일에 정안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이후 정안공립심상소학교와 정안국민학교를 거쳐 정안초등학교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37년에 학생 수가 증가하여 문천간이학교가 개교하였는데, 1944년에…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조선조의 역대 군주 명단이다. 태조부터 순종까지의 이름이 한자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 지방법원에 만개한 벚꽃을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주지법 주변에는 벚나무가 많아 공주의 주요 벚꽃 명소 중 하나로 유명했다.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 있던 대신궁은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 주변부의 영명학교 확장과 앵산공원 공원화의 진전으로 충남도청(現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의 뒤편 봉황산 기슭으로 이전했다. 앵산공원에 있던 작고 남루한 모습은 사라지고 입구부터 대신궁을 알리는…
백제사적연구회에서 주관하는 성화채화, 삼산제, 산성제, 왕릉제 세부 행사계획서를 수록함
1961년 공주군 계룡면 향지리에서 열리는 회갑연에 초청장이다. 작성자 부친의 1961년 4월 30일 회갑연에 초청하는 내용으로, 일시와 장소 발송인, 수신인 등이 적혀 있다.
1969년에 발급된 정안국민학교 졸업장이다. 정안초등학교는 1922년 5월 23일에 정안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이후 정안공립심상소학교와 정안국민학교를 거쳐 정안초등학교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37년에 학생 수가 증가하여 문천간이학교가 개교하였는데, 1944년에…
http://archives.kdemo.or.kr/isad/view/00041379
본 엽서 속 차부는 현재의 중동 큰 사거리와 작은 사거리 사이에 있던 조치원 차부의 옛 모습으로 현 중동 국민은행 부근이다. 이곳에는 '조선자동차운송주식회사', 마루보시(丸星) 운송회사, 철공장 등 차부와 관련된 상점이 즐비했다. 차부지 답게 주변에 당시 유행하던 포드…
1963년 학생의 날에 개최할 공주문화원의 제2회 공주 관내 초중고교생 백일장 개최 안내 공문이다.
1976년 제36회 공주군 추계 친목배구대회 개최요강이다. 당시 배구대회는 공주중동초등학교 교정에서 05/23 진행될 예정이었고, 본 자료에는 참가신청서 양식이 수록되어있다.
공주군 계룡면 향지리의 동향인들이 모여 1961년 조직한 성실친목계에서 보관하던 영수증이다. 산성동에 위치한 한양상가에서 모임을 위한 육류를 구입한 것을 증빙하였다. 2000년대 초반의 식대 물가를 알 수 있다.
공주군 우성면 단지리에서 출생하고 동면 동대리로 주소를 이전한 김상진의 호적등본이다. 전(前) 호주로 김상진의 아버지인 김칠봉(金七奉)이 기재되어있고, 어머니 김단연(金丹然), 처(妻) 이창분(李昌分), 자녀들 그리고 손자들까지 등록되어있다. 해당 인물들의 출생연도와…
기증자가 공주엽연초생산조합에 엽연초를 수납하고 관련 대금 청구 및 영수증을 작성한 내역이다.
1959년 공주고등학교 진우섭 학생의 물품보관증으로, 갱지 종이 뒷면에 작성하고 증빙을 위해 도장을 날인하였다. 525번에 상업교과서를 보관하였으며, 학년과 반, 번호, 성명, 날짜가 자필로 기재되어 있다.
백제문화선양위원회위원장의 주재로 제 42회 백제문화제의 행사종목 변경 , 세부추진계획 , 행사예산안에 대해 토의한 회의록 / 회의요약 , 부여군백제문화선양위원회 명단 수록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 중 마곡사 고방에 소장된 금화당대선사성유진영의 설명글로 금화당 성유의 영정이다.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