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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143건 공산성
일제강점기 공산성 내 영은사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본 자료는 제2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1921년 공주를 방문했을 당시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이다.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공산성의 쌍수정은 조선 16대 국왕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난 햇을 때, 나무에 기대어 난의 평정소식을 들었다는 유지를 기념하기 위해 1734년(영조 10) 충청도관찰사 이수항이 건립한 누정이다. 엽서 속 모습은 오늘날과 다르게 쌍수정 아래 사적비각 쪽에서…
일제강점기 공산성 진남문의 여름철 산록이 우거진 모습을 배경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본 자료는 제2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1921년 공주를 방문했을 당시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이다.
1917년 무렵 홍수로 제민천 하류가 물에 잠겼을 때, 금강의 나룻배가 드나들던 모습으로 추정되는 사진그림엽서이다. 엽서 왼쪽 정지산과 오른쪽에 공산성, 하얀색의 석유창고를 확인할 수 있다.
1911년 공주 산성정 일대의 대로에서 진행한 신무일왕 탄신기념 식목행사의 모습을 엽서로 제작한 것이다. 대로의 끝 부분에 위치한 공산성 쌍수정의 모습과 함께 당시 산성정에 위치한 석유창고의 모습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쌍수정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쌍수정의 윗편에 공산성과 쌍수정에 대한 설명이 쓰여있다. 설명에 의하면 '쌍수정은 조선개국 233(1625)년 인조가 한양의 난리(이괄의 난)를 피해 와서 난이 진압된 후, 왕이 머물던 것을 기념하기…
일제강점기 공산성 쌍수정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인부의 모습을 사진그림엽서로 제작한 것이다. 본 자료는 수원광교박물관 측에서 제공하는 500007462와 동일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는 백제 웅진도읍기 산성이 축조되었을 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루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은 식민지정책에 따라 사적지를 공원화 하여 '산성공원'이라 불리었다. 엽서의 상단에 68년 간 백제의 왕성이었다는 사실과 진남루의 규모가 붉은 글씨로…
일제강점기 공산성 공북루와 금강 목교(木橋)의 모습이다. 공주에서 출발하여 조치원과 청주를 잇는 공청가도(公淸街道)가 만들어지고, 공주와 조치원 사이에 근대적인 신작로가 나면서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막에서 공산성으로 건너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나룻배 보다는 언제든…
조선후기 충청병영의 중군영지에 해당하는 이곳은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가 있는 장소이다. 1895년 갑오개혁에 따라 전국의 산성과 군영을 폐지하면서 이곳의 군영 관련시설은 점차 없어졌다. 이후 공주 갑부 김갑순에게 불하되면서 민가와 시장이 들어서 성안마을이 형성되었다.…
일제강점기 금강 위에서 촬영한 공산성 공북루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엽서이다. 엽서의 후면에는 충청남도 공주에서 일본 오사카로 보내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엽서를 보내는 인물이 본 엽서의 사진을 공주의 명소로 설명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내 명국삼장비를 비각 전경사진에 후편집을 가미하여 비석을 합성한 사진그림엽서이다.
1930년대 '백제의 고도'시리즈 엽서 중 공주 공산성 진남루를 배경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일제는 사적지로서의 공산성을 격하시키기 위하여 벚나무를 식재하고 공원화를 꾀했다. 산성의 남문인 진남루 부근에도 많은 벚나무를 심었다. 그러면서 공산성에서 산성공원으로…
일제강점기 공산성에서 출토된 금동봉황형 장신구 엽서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에서 출토된 금제불상 엽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