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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의 계룡공립보통학교의 전경 모습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의 계룡공립보통학교에서 진행 중인 수업 시간 모습으로 추정된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구분지어 자리하고 있으며, 게시판과 난방기구 등이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의 계룡공립보통학교에서 진행 중인 수업 시간 모습으로 추정된다. 교실 앞부분의 서적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학생들과 삼삼오오 모여 논의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인다.
일제강점기의 계룡공립보통학교 졸업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으로, 본교 건물을 배경으로 선생님들과 졸업생들이 함께 사진을 촬영하였다.
일제강점기 때의 계룡공립보통학교의 체육시간에 럭비훈련 중인 모습으로 추정된다. 학생들이 운동장에 열을 맞춰 서 있으며, 운동장 뒤쪽으로 많은 학생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의 계룡공립보통학교의 체육시간에 럭비훈련 중인 모습으로 추정된다. 학생들이 운동장에 열을 맞춰 서 있으며, 운동장 뒤쪽으로 많은 학생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의 계룡공립보통학교의 체육시간에 럭비 경기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추정된다. 사진 뒤쪽으로는 학교로 추정되는 건물과 신작로가 보인다.
공주 계룡면 유평리에 거주하던 자료기증자의 누이와 친구의 모습이다. 사진은 현재 논산시로 편입된 노성면 화곡리의 친척집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계룡공립보통학교에 재학하던 누이와 친구는 교복으로 사용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다. 교복치마 하단에는 선명한 줄이 남아…
일제강점기 계룡산에 모인 계룡면 유지들의 모습이다. 유지 대부분 정장을 입고 각반을 차거나 칼을 소지하고 있는 모습이 당시 상황을 알려준다.
일제강점기 공주 계룡산 단풍나무 숲길 모습이다. 단풍놀이를 즐기기 위해 계룡산을 찾은 지역유지와 일본인으로 추정된다. 우측의 조선인과 대비를 이루는 점이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 계룡산 갑사 계곡의 운치있는 풍경이다. 계곡 옆 희미하게 보이는 건물은 구한말 경술국치에 앞장선 친일파 윤덕영이 노년에 머물던 간성장(艮成莊)이라 불리는 별장으로 추정된다. 간성장은 공주의 갑부 홍원표가 갑사 앞 계곡 암반에 건축하여 윤덕영에게 바친 한옥…
1910년대 초반 '조선의 명소(朝鮮名所)'라는 시리즈로 발행된 사진그림엽서 중 계룡산 남매탑을 배경으로 제작한 것이다. 본래 명칭은 청량사지 7층석탑과 5층석탑이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사찰지이다. 남매탑 앞에 제복과 양복을 입은 사람과 흰색의 전통 한복 차람의…
일제강점기 계룡산 야유회를 떠난 유평리 지역 유지들의 단체 사진이다. 가장 좌측 양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은 채 앉아 있는 인물이 당시 면서기 였던 진상옥 님이다.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는 계룡산으로 향하는 현재의 동학사 매표소 부근 길목에서 바라본 계곡과 산능선의 모습이다. 계룡산 정상부에는 삼불봉과 관음봉 등 웅장한 봉우리가 있다.
이 엽서는 계룡산의 절승 시리즈 중 하나이다. 계룡산의 맑고 깨끗한 계곡을 배경으로 지팡이를 들고 등산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 중 일부는 원판 촬영 후 후편집을 통해 채색과 함께 가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물의 복장이 말끔한 양복이나 제복차림을 한 것으로 보아…
이 엽서는 계룡산의 절승 시리즈 중 하나이다. 계룡산의 맑고 깨끗한 계곡을 배경으로 지팡이를 들고 등산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 중 일부는 원판 촬영 후 후편집을 통해 채색과 함께 가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물의 복장이 말끔한 양복이나 제복차림을 한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갑사의 철당간과 지주의 모습이다. 제복과 양복차림의 인물로 보아 지역의 유지나 관료, 순사 등의 인물로 추정된다. 본 엽서는 조선의 명소 엽서시리즈 중 하나로 발행되었다.
일제강점기 계룡산 연천봉 자락에 위치한 연천사(蓮天寺)로 지금의 등운암이다. 조선시대에는 정씨(鄭氏)의 왕기(王氣)를 누른다는 뜻의 압정사(壓鄭寺)라 불렸다. 이 사진그림엽서는 계룡산의 절승 시리즈 엽서 중 하나인데, 엽서 속 인물은 본 사진을 촬영 후 후편집을 통해…
1990년 발행된 공주여고 동창회보 청란에 기재된 일제강점기 공산성 공북루와 성안마을의 풍경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공북루와 금강 목교(木橋)의 모습이다. 공주에서 출발하여 조치원과 청주를 잇는 공청가도(公淸街道)가 만들어지고, 공주와 조치원 사이에 근대적인 신작로가 나면서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막에서 공산성으로 건너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나룻배 보다는 언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