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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계룡산 갑사 입구의 단풍이 내려앉은 모습이다.
계룡산 청량사지 석탑과 일출 모습을 배경으로 제작한 엽서이다. 청량사지 석탑은 오늘날 계룡산 남매탑으로 불리는 곳이다.
계룡산 미타암은 동학사 산내암자로 길상암 관음암과 함께 위치한 암자이다.
1941년 공주 봉정동 일원의 전답을 감정한 경지감정서이다. 서기는 청본경범(靑本景範)이며, 논은 926평이고 밭은 659평인 총 1,585평에 대한 감정이 이뤄졌다. 감정 결과 시세보다 저렴한 값이 치뤄진 것으로 보인다. 자료 속 주소지인 봉정동은 조선 말기 공주군…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앞 민가의 모습과 나루터의 모습을 배경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산성의 성벽이 오늘날과 달리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모습이며, 공북루에서 강가로 이동하는 오솔길이 정돈된 모습이다. 아울러 본 사진그림엽서 속 공북루 민가는 1920년대 중반…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8년 공주에 주둔하며 공주사람을 보호하던 명나라 세 장수 제독 이공과 위관 임제, 유격장 남방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비문에는 명의 장군 이제독이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충남도청의 정문인 포정사 모습을 담은 사진그림엽서이다. 엽서에는 당대에 관찰당이란 특이한 명칭으로 작성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루와 연결된 담장이 전통의 형상을 온전히 갖고 있으며, 포정사 앞 관아대로(現 감영길)의 건물과 도로망도 전통적인 형식을 갖춘 모습이다.…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문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성문 안쪽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비석이 있으며, 성문 밖의 진입로가 정비되기 이전의 모습인 것으로 보아 1920년대 초, 공산성 공원화 정비 이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공주군 우성면에 거주하는 강촌신일(岡村新一)이 금성금융조합을 통해 일금 270엔 상당의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계약서 일체이다. 계약서 작성을 위해 첨부한 서류로는 부동산목록과 매도증서, 저당권증서, 자작농 현황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동산목록에 따르면 계약인은 공주군…
공주군 의당면에 거주하는 양광정이란 인물이 본인 소유의 부동산을 매도하며 계약한 근저당권설정계약서와 부동산 목록, 경지감정서, 토지등기 일체의 문서이다. 매도인은 금성금융조합에 본인 소유의 토지를 바탕으로 일금 1,200원을 대부한 것으로 확인된다.
일제강점기 공주군농회에서 잠업을 통해 생산한 산물을 수매하기 위해 발급한 전표이다.
1963~1968년 공주문화원에 방문한 이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적어놓은 방명록이다. 당대의 유명 정치인 중 하나인 신동욱과 미문화원 관계자 등 유명인의 방명록도 확인할 수 있다.
1971년 4월 공주문화원의 생활관 신축을 기념하여 거행한 신축기념식에서 서명한 방명록이다. 서두에는 생활관 신축의 의의와 건물의 연혁에 관해 간략히 소개한다.
1969~197년 공주문화원에 방문한 이들이 제각기의 소감을 적어놓은 방명록이다. 당대의 충청남도 도청 내 국장 등의 서명이 남아있으며, 미국 선교사 등의 방명록도 확인할 수 있다.
1973~1988년 공주문화원에 방문한 이들이 제각기의 감회를 적어놓은 방명록이다. 대만문화원 관계자와 정석모 국회의원, 서울신문 기자 등의 글귀를 확인할 수 있다.
1954년 공주문화원 개원을 기념한 행사에서 작성받은 방명록이다. 당대 공주의 유력인사의 친필이 담겨있다.
1989년 공주군 민속지 제작을 위해 공주문화원에서 제작하여 조사원에게 배포한 기초설문조사지의 양식이다.
1989년 공주군 민속지 제작을 위해 공주문화원에서 제작하여 조사원에게 배포한 기초설문조사지의 양식이다.
1989년 공주문화원에서 주관하여 향토사료발간사업의 일환으로 민속지 제작을 위해 각 이장에게 발송한 협조 요청 공문의 초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