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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충청병영의 중군영지에 해당하는 이곳은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가 있는 장소이다. 1895년 갑오개혁에 따라 전국의 산성과 군영을 폐지하면서 이곳의 군영 관련시설은 점차 없어졌다. 이후 공주 갑부 김갑순에게 불하되면서 민가와 시장이 들어서 성안마을이 형성되었다.…
일제강점기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 1920년대 초까지 있었던 일제의 대신궁이다. 일제는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위해 곳곳의 사적지를 공원화하면서 그곳에 신사를 건립했다. 공주에서는 공산성을 산성공원이라 격하시키고, 미국 선교사가 세운 영명학교 인근을…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공주군 계룡면 향지리의 동향인들이 모여 1961년 조직한 성실친목계에서 보관하던 영수증이다. 산성동에 위치한 양수떡집에서 모임을 위한 떡을 구매한 것을 증빙하였다. 2000년대 초반의 물가를 알 수 있다.
소진철과 일본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 사이에 오간 편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문건이다. 맨 앞쪽에 소진철 교수의 집 주소가 메모지로 있고, 그가 쓴 '해양대국 대백제'라는 책이 소개되어 있다.
공주사범학교 병설 중학교 1학년 남자반에 재학중인 이관옥 학생이 1956년 7월 26일부터 9월 3일까지 방학 중에 작성한 일기다.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한 일, 공주 장에 따라나선 일, 방학숙제를 한 일, 도의원 선거에 투표를 하러 가신 아버지 이야기, 광복절에…
1997년 3월 20일 충청남도테니스협회가 주최한 충청남도 춘계 종별 테니스대회에서 공주고등학교 학생 이흥로, 이정구가 남자 고등부 개인 복식 부문에서 3위를 차지하여 받은 상장이다.
1956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납세고지서이다. 전표에 의하면 발행연도 및 납세자의 성명, 리(里)가 적혀있고, 다음칸에 조세명인 '갑종제1종토지수득세'가 인쇄되어 있다. 이하로 납부해야할 정조(正租)을 기입하는 란이 있다. 계룡면 유평1리 진상옥 님에게 청구된…
윤여헌 교수의 조카인 윤홍식이 윤여헌 교수에게 전해올린 두번째 친필 문안 서신이며, 동토 윤순거 선생의 친필 유묵에 대한 소장 여부를 여쭈고, 자신이 일본에서 특별 전시회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었다.
공주영명중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1954년 호국대 비용의 영수증이다. 영수증에 의하면 4,5,6월에 걸친 3개월분의 호국대 비용으로, 일금 삼만원을 청구하였다. 자료 하단에는 영수받은 학생의 성명이 적혀 있다.
1964~1966년 공주문화원은 전국 최초로 자립된 문화원 청사 건축을 진행했다. 본 자료의 정확한 연대는 파악할 수 없으나 05/27 기준으로 작성된 지불액 명세서이다.
1972년 지방농림기원보인 기증인을 3호봉으로 발령한다는 통지서이다.
1964.03.20에 진행될 공주문화원 주부교양강좌 개최 안내문이다. 강좌에서는 가족계획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공주보건소 이수복 선생이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2009년 6월 17일 공주향토문화연구회 답사 자료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유교문화의 올바른 이해
2. 유교문화유산의 종류
1986.9. 작성된 파평윤씨 충청남도대전지구 화수회 규약이다. 宗訓(종훈)을 지키는 生活(생활) 이라는 제목으로 총 3조로 구성되었으며, 1조는 숭조경종, 2조는 충효전가, 3조는 종친돈독으로 구성되었다.
공주향토문화연구회 2002년 4월 답사 안내장이다. 답사 일시는 2002.4.16., 행선지는 강경으로 주제는 '강경의 어제와 오늘'이다. 안내장에는 모임일시,출발하는곳,출발시간,행선지,안내,회식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단에 2002.4.14. 백제문화세미나가 연기군…
1989학년도 우성초등학교 현황이 담긴 문서이다.
누마즈 북로타리클럽 회장이 일전에 공주로타리클럽에서 보냈던 초대장의 답장을 팩스로 보낸 것이다. 2011년 10월 3일부터 2011년 10월 5일까지 방문일정을 언급하였고, 참가자 명단이 첨부되어있다.
남궁화가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쓴 가계부이다. 표지에는 '취락재 수입지출부'라고 쓰여 있는데, 취락재는 남궁화가 장년기에 들어 서울에 거주하며 붙인 당호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