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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334건
2004년 당시 정안초등학교의 연혁 및 학생현황, 교직원현황 및 교내 시설과 지역 실태 등이 기록되어 있고, 교육목표를 위한 방향과 진행사항 등이 적혀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쓴 메모로, 어떤 글의 목차로 추정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1. 전설 및 지명고
2. 향토사-산천형승, 향교 서원, 불사, 사우, 성곽, 봉수, 고적, 누정 탑비(탁본 및 해설), 인물
3. 토속자료-풍속, 민간신앙, 연중행사, 오락유희,…
2007년 10월 10일 파평윤씨 노종파 종무수습위원회 위원장 윤택병이 종중회원들에게 보낸 통신문 제3신이다. 문서에 따르면, 파평윤씨 노종파 종무수습위원장은 2007.4.22. 병사총회(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총회) 이후의 종사 진행상황에 대해 서술하고, 파평윤씨종중의…
1965.11.25, 다방 충원에서 진행된 제111회 음악감상회 안내문이다. 감상곡으로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 연주되었고, 회비로 30원이 징수되었다.
2009년 5월 5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진행한 행사 개최 결과 보고 문서다. 행사 일시, 장소, 내용, 참여인원과 문화행사 내용이 적혀있다.
공주군 의당면에 거주하는 양광정이란 인물이 본인 소유의 부동산을 매도하며 계약한 근저당권설정계약서와 부동산 목록, 경지감정서, 토지등기 일체의 문서이다. 매도인은 금성금융조합에 본인 소유의 토지를 바탕으로 일금 1,200원을 대부한 것으로 확인된다.
서류2 : 알림(조교회 동계 세미나 관련)
1923년 3월 충남도청 북측으로 설치된 충청남도 평의장이다. 도평의회 또는 도회로 불리던 위 기관은 조선총독부에서 외형상 지방자치를 위해 전국 13도에 설치한 자치의회였다. 충남도평의회는 1920년 10월 처음으로 출범했고, 광복 이후 폐지되었다. 500007447…
1909년 7월 26일자로 칙령 제62호 사립학교령에 의해 '사립영명학교'의 설립을 허가한다는 문서이다.
1962.06.23 공주문화원에서 실시한 원예교실개최 안내문이다. 당시 문화원 내 전시실에서 진행한 원예교실은 화초 기르는 법과 분갈이 방법 등을 강의했다.
1972년 공주문화원 이사장이 전임하여 공석이된 이사직을 새롭게 선출하기 위해 서면결의를 요청하는 통지문과 서면결의서 양식이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로, 2007년 10월에 진행될 공주로터리리클럽 30주년 행사를 위해 일본 누마즈클럽 측과 3차례에 걸쳐 통화한 내용에 대해 요약정리한 것이다. 첫번째 메모는 문서등록번호 500011675 자료와 관련된 메모로, 2차 연락을 취하기로…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사대부고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3년 4월분 월급봉투로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전용으로 제작되었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1966년 반포국민학교에서 제6학년 이철규 학생에게 수여한 표창장으로, 학업이 우수하고 품행이 단정하여 이를 표창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월급봉투이다. 날짜가 기입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지급날짜는 알 수 없지만, 기증자가 교직생활 중 받은 월급봉투를 모아 정리하는 과정에서 1975년도에 발급된 봉투와 함께 놓은 것으로 보아 연도를 추정할 수 있다.…
공주문화원에서 1988년도 제2차 세입세출 추가경정예산안을 상정하고 심의 가부를 결정하기 위해 발송한 서면결의문과 서면결의 투표용지이다.
1992년 8월 공주 금성여자고등학교 교장 신경남의 인사말이다. 일본 누마즈북로타리클럽 창설 30주년 기념사업과 공주로타리클럽과의 결연 10주년 기념사업으로서 치르는 상호초청교환행사장에서 같은 학교 이사장 김윤태이 나눈 인사말 내용과 비슷하다.
조선후기 충청감영시절에 건축한 외삼문과 내삼문, 선화당으로 충남도청 외삼문 밖에서 충남도지사의 근무지인 선화당을 바라본 모습이다. 선화당 중앙에 걸린 '충청남도(忠淸南道)' 현판이 온전하게 보인다. 300여년 옛 충청감영시절을 엿볼 수 있는 대문기둥의 낡은 주련…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