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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국민학교에서 33회 졸업생인 진우섭님에게 발행한 교과서 대금 내역 통지서이다. 청구받은 학생의 학년과 반과 성명을 기재할 수 있는데, 4학년 2반이라고 적혀있다. 대금은 1학기의 청구내역과 국어, 사회, 과학, 셈본 등 각 교과명 및 상세 금액이 적힌 2학기의…
일제강점기 충남도청 앞 관아대로에서 동편의 앵산공원을 바라보고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앵산공원에는 현재 유관순 열사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공원 아래 대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조선식산은행 공주지점이 위치해 있으며, 길 양쪽으로 짚신과 꽃신을 파는 신발가게, 호미 등…
1968년에 작성된 정안국민학교 입학원서이다. 원서는 퇴학, 입학, 휴학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약식이다.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의 이름과 생년월이르 보호자의 성명과 서명이 기재되어 있다. 정안초등학교는 1922년 5월 23일에 정안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이후…
1950년 공주 계룡면에서 발행한 영수증으로, 1950년도 제1기분 학교비특별부과금 명목의 세금 일금 오십원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문서 가장 우측에 연도와 리(里), 납부자의 성명 등을 기재할 수 있는 칸이 있고, 영수증은 공주군 계룡면 수입원겸 지출원이…
1952년도 공주고등학교 동창회 관계서류철이다. 동창회 회칙, 총회 안내장, 공주고등학교 동창회 관련 신문스크랩, 회람 등이 있다.
1964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재산세 및 소방공동시설세 영수증이다. 소방공동시설세는 21원이며, 재산세는 총 135원으로, 그 내역은 각각 토지세 27원, 가옥세 108원이다.
신문 기사를 인쇄한 것으로 조선일보 2003년 2월 13일에 정우상 기자가 쓴 기사이다. 제2건국위원회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내용이다.
일제강점기 금강 수계를 오르내리는 부강-공주간 연락선의 모습을 사진그림엽서로 제작한 것이다. 본 자료는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철도선로안내라는 책자에 수록된 사진에 기반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2년 정안면 문천리 일대의 토지를 주고받은 매매계약서로 추정된다.
조선총독부에서 1911년 발행한 시정 1주년 기념 사진그림엽서이다. 자료 좌측 상단에는 공주에서 사용된 기념인장과 ‘公州’ 명문이 날짜와 함께 찍혀있다. 엽서 뒷면에는 공주 반죽리(班竹里)에서 홋카이도(北海島)로 발송하는 글이 적혀 있다.
공주군 계룡면 향지리의 동향인들이 모여 1961년 조직한 성실친목계에서 보관하던 계약서이다. 2008년도 강화도 일원으로 모임을 위해 공주시 신관동 현대아파트 1차 상가건물에 위치한 누리관광여행사와 버스 전세 임대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부여군수가 제 24회 백제문화제 행사비 교부를 결정하는 공문
부여군수가 백제문화제 거행에 따른 관계자 회의 개최를 알리는 공문
1957년 공주중학교 학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7,8,9월 간 3개월분의 사친회 월회비 일금 삼천환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공주중학교사친회 수입원의 명의로 영수하였으며 영수받는 학생의 학년, 반, 번호 및 성명이 우측에 기재되어 있다. 상단에는 '공중'이라는…
공주군 우성면에 거주하는 강촌신일(岡村新一)이 금성금융조합을 통해 일금 270엔 상당의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계약서 일체이다. 계약서 작성을 위해 첨부한 서류로는 부동산목록과 매도증서, 저당권증서, 자작농 현황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동산목록에 따르면 계약인은 공주군…
1975년 공주의 백제 고도 1,500주년을 맞이하여 그 의의를 자신의 글로 엮은 박용진 선생님의 짧은 수필이다.
충남도청의 정문인 포정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문루 2층의 창호지가 유리로 바뀌었으며, 문루와 연결된 담장도 기와와 돌이 조화를 이루던 전통식 담장에서 일제식 널빤지를 이용한 벽으로 바뀌었다. 이는 500007866과 비교하면 그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공주지방법원에서 조선총독부 판사 和田四郞가 선고한 피고인들의 명단과 주문, 선고 이유서가 수기로 적혀있다. 공주군 공주면의 예수회 목사 현 석칠(39세)를 비롯하여 영명학교의 교사와 학생 등 젊은 2~30대의 18인이 보안법 위반으로 평균 징역 1년씩을 선고받는다.…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