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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문정공(文正公)파 28세손인 김윤동선생이 기탁한 유물로 개최한 고문서 특별전의 도록
공주시 명승길안내판 시안
누마즈로터리클럽을 환영하는 환영사의 윤 교수 원고이다.
2000.10.19.생산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공주시협의회 개최 알림 공문이다. 월례회의는 2000.10.31. 공주시청 상황실에서 개최되며 자문위원들에게 각각 발신하였다. 붙임으로 '10월 월례회의 과제'가 있다. 1.10월 월례회의 회순 2.10월 월례회의 과제…
조선후기 충청감영시절에 건축한 외삼문과 내삼문, 선화당으로 충남도청 외삼문 밖에서 충남도지사의 근무지인 선화당을 바라본 모습이다. 선화당 중앙에 걸린 '충청남도(忠淸南道)' 현판이 온전하게 보인다. 300여년 옛 충청감영시절을 엿볼 수 있는 대문기둥의 낡은 주련…
홍익명경대건립위에서 충남정신발양추진 공주시협의회장에게 보낸 공문이다. 홍익명경대건립위원회에서 홍익명경대건립공동주최단체 영입을 위해 충남정신발양추진협의회 공주시협의회의 협조와 참여 부탁하고 있다. 2장에는 홍익명경대(역사비) 건립취지, 3장에는 역사비 조형도, 4장에는…
부여군수가 제 24회 백제문화제 행사비 교부를 결정하는 공문
1961.12.28, 다방 낭낭에서 진행된 제77회 음악감상회에 대한 안내문이다. 당시 감상곡으로는 헨델과 모차르트의 음악이 연주되었고, 참석 회비로 200환이 필요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로, 공주의 역사서 목록이 기재되어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은데, 우선 메모의 중앙에

1. 공산지 을미(1859년)간행, 안사 김응근 서문 있음
2. 공산지 서병호 발행 1922(임술)간행 충남지사 서문
3. 충남향토지 1935년…
1957년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영수증으로, 교과서 대금으로 일금 오백오십오환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자료 좌측으로 학생 성명이 기입되어 있다.
1968년에 작성된 정안국민학교 입학원서이다. 원서는 퇴학, 입학, 휴학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약식이다.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의 이름과 생년월이르 보호자의 성명과 서명이 기재되어 있다. 정안초등학교는 1922년 5월 23일에 정안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이후…
1962.11.30, 공주문화원 주최로 다방 승리에서 진행한 제88회 음악감상회 안내장이다. 당시 감상곡으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8번이 연주되었다. 또한 당시 본 감상회에 참석하기 위해선 20원의 회비를 납부해야했다.
2004.7.29.창립한 백제문화연합회에서 발행한 월간호로, 2004.12.23.발행한 3호이다. 이 호의 주요주제는 '한일친선교류회 구문사모'로 칼럼, 토론, 질의, 일본어교실, 회원플라자, 백제의향기 등 여러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어와 백제문화에 대하여…
1956년 금융조합에서 발행한 수입이자영수증이다. 단기로 기재된 날짜 밑으로 영수받는 자의 성명이 적혀있다. 전표 가장 우측에는 세로로 금액을 기재할 수 있고, 대부(貸付)종별과 연월일, 산출원금(算出元金)과 연월일 및 일수, 이율과 이식(利息)을 차례대로 적는 칸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발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주군 신풍면 면민 특별자금 일금 150원에 대한 영수증이다.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서 공산성 방향인 북쪽을 바라보고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현재 중동 큰사거리 부근에 충청병영의 군영지인 우영(右營)이 있던 장소를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 공주목은 공주진영이 설립되어 충청우영으로서 1895년(고종 32) 폐지될…
1981년도 공주군교육청에서 발행한 장학지도계획을 편철한 문서이다. 장학지도의 계획, 목적, 방침 및 단계별 지도방법, 학교분담내용, 유의사항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