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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244건
1973년 9월 21일부터 1972년 12월 27일까지의 기록이다. 기증자의 개인적인 일화가 다수 차지하고 있다. 기증자는 신풍면 산정구에서 살면서 교동의 직물공장과 유구의 직물공장에서 근무하였고, 결혼을 하면서 사곡면으로 오게 되었다. 일기는 혼인을 한 시점부터…
1973년 2월 13일부터 1972년 9월 18일까지의 기록이다. 기증자의 개인적인 일화가 다수 차지하고 있다. 기증자는 신풍면 산정구에서 살면서 교동의 직물공장과 유구의 직물공장에서 근무하였고, 결혼을 하면서 사곡면으로 오게 되었다. 일기는 혼인을 한 시점부터…
1972년 7월 21일부터 1973년 2월 12일까지의 기록이다. 기증자의 개인적인 일화가 다수 차지하고 있다. 기증자는 신풍면 산정구에서 살면서 교동의 직물공장과 유구의 직물공장에서 근무하였고, 결혼을 하면서 사곡면으로 오게 되었다. 일기는 혼인을 한 시점부터…
1972년 2월 10일부터 1972년 7월 20일까지의 기록이다. 기증자의 개인적인 일화가 다수 차지하고 있다. 기증자는 신풍면 산정리에서 살면서 교동의 직물공장과 유구의 직물공장에서 근무하였고, 결혼을 하면서 사곡면으로 오게 되었다. 일기는 혼인을 한 시점부터…
일제강점기 공주 계룡산 단풍나무 숲길 모습이다. 단풍놀이를 즐기기 위해 계룡산을 찾은 지역유지와 일본인으로 추정된다. 우측의 조선인과 대비를 이루는 점이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 공주 지방법원에 만개한 벚꽃을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주지법 주변에는 벚나무가 많아 공주의 주요 벚꽃 명소 중 하나로 유명했다.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10년대 초반 공산성 공북루 앞 산성나루터를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북루와 지금의 전막부근을 오가는 나루터는 흔히 산성나루로 불렸는데, 엽서 속에서는 '쌍수산성 제2도장(渡場)'이라 표기하여 공산성에는 여러 개의 나루터가 있었음을 알 수…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일제강점기 공주 공산성 내 위치한 쌍수정을 배경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쌍수정과 밑에 위치한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 현재의 공주사대부고 자리에 위치해있던 충청남도 도청 정문을 배경으로 제작된 사진그림엽서이다. 문루의 명칭이 '포정사'에서 '금남루(錦南樓)'로 개칭되었다. 이후 1928년 낙후되었다는 이유로 철거되었다. 금남루 옆 2층의 콘크리트 골조로 건축된…
쌍수정은 1911년 공주를 방문한 독일인 신부 베버가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공산성에서 유명한 장소이다. 그는 "우묵땅에는 울타리를 두른 비각이 있었고, 그 안에는 큰 거북 등에 비석이 서 있었다"라는 기록을 통해 쌍수정 사적비도 언급했다. 본 자료에서는 쌍수정 누각에…
1911년 공주 반포면에서 발생한 선산에 대한 송사를 다룬 자료이다. 해당 자료에는 당시 계약을 맺은 주체의 이름과 계약을 어길 시 벌금 1,000원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증빙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인 대정 6년 조선총독부에서 공주감옥 수인으로 이을규씨를 임명했다는 것을 증빙하는 임명장이다.
1969년 공주군수가 발행한 김갑순 임야대장등본이다. 당시 김갑순은 690만원 상당의 임야를 소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유구에서 태어났으며,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에 대한 열망으로 평생일기를 써왔다. 기증자의 직업이었던 직조, 방앗간, 농사에 관련된 이야기와 유구의 생활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오랜 천주교신자로 유구성당의 사목회장을 역임했다. 유구성당에 관한…
1938년 유구에서 태어났으며,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에 대한 열망으로 평생일기를 써왔다. 기증자의 직업이었던 직조, 방앗간, 농사에 관련된 이야기와 유구의 생활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오랜 천주교신자로 유구성당의 사목회장을 역임했다. 유구성당에 관한…
1938년 유구에서 태어났으며,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에 대한 열망으로 평생일기를 써왔다. 기증자의 직업이었던 직조, 방앗간, 농사에 관련된 이야기와 유구의 생활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오랜 천주교신자로 유구성당의 사목회장을 역임했다. 유구성당에 관한…
1938년 유구에서 태어났으며,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에 대한 열망으로 평생일기를 써왔다. 기증자의 직업이었던 직조, 방앗간, 농사에 관련된 이야기와 유구의 생활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오랜 천주교신자로 유구성당의 사목회장을 역임했다. 유구성당에 관한…
1938년 유구에서 태어났으며,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에 대한 열망으로 평생일기를 써왔다. 기증자의 직업이었던 직조, 방앗간, 농사에 관련된 이야기와 유구의 생활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오랜 천주교신자로 유구성당의 사목회장을 역임했다. 유구성당에 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