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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옛 문화 전승에 새 전기 신문 기사


범위와 내용1975년 10월 22일 충남일보에 게재된 '옛 문화 전승에 새 전기' 신문 기사

옛 문화 전승에 새 전기
21회 백제문화제 결산
백제인의 슬기와 지혜를 본받아 전통문화를 되살려 민족문화로 꽃피우며 진취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성화를 올린 지 금년이 스물한 돌. 제21회 백제문화제가 지난 14일 오전 10시 옛 도읍지였던 공주 봉화대에서 성화를 채화하면서 연 사흘간의 화려한 막을 올렸다. 특히 금년은 도읍지를 부여에서 공주로 옮긴 지 1천5백 년이 되는 해로서, 어느 때보다 다채롭고 푸짐한 백제문화제가 되도록 거도적인 행사 준비를 했었고 또한 스물한돌이 되면서 백제문화제를 대전에서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14일 오전 10시 공주에서 점화된 성화는 공주군청에 안치됐다가 저녁 7시 공주 읍내에 설치된 초롱등에 점화, 공주시가지를 밝혀주었고 이어 공주문화원이 주최한 꽃불놀이와 중동 로타리에서 있은 농악놀이 강강수월래 등은 옛 백제 때의 명절을 재현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14일 저녁 7시 부여읍 규산성상봉에서도 조국의 안녕과 1년의 풍요를 기원하는 삼영산제를 비롯 읍내 일원에 걸친 청사초롱행렬, 관등놀이 등으로 전야제가 피크를 이루었다.
이와 함께 대전에서도 처음으로 베풀어지는 백제문화제의 전야제에 14일 저녁 7시 서정화 충남도지사의 초롱등 점화로 도청에서부터 목척교까지의 가로등에 매어단 초롱등에 점화 축제 분위기를 돋구기도 했다.
전야제에 이어 15일 오전 10시 공주지방에선 중동 로타리로부터 백제 무사에 의해 봉송된 성화가 서 충남지사에게 전달, 공산성에 마련된 성화대에 점화됨으로써 본격적인 백제문화제의 막이 올랐고 백제의 국력을 사해에 떨친 문주왕 동성왕 삼근왕 무령왕 등 4왕의 유업을 기리는 추모제가 올려졌으며 공주북중 공주여고 공주사대부고 여학생 등이 펼치는 농악 및 고전무용이 운집한 군민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는 등 문화제의 절정을 이루었다.
이어서 백제시대의 무사 궁녀 등으로 가장한 가장행렬이 공주시가지를 누볐는데 이를 구경하러 나온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한편 저녁 7시 30분부터 초롱등 점화 행렬 꽃불연날리기, 봉화 올리기, 관등선 띄우기 등 당시의 풍류를 대부분 벌였고 저녁 8시 금강 백사장에서 있었던 낭자대군무놀이는 초롱등 행렬이 도착, 가을밤 하늘을 비추는 속에서 펼쳐져 장관을 이루었다. 또 16일에는 향토미전, 백제문화예술제 등 당시의 문화를 재현시켰고 박물관 강당에서는 천도 1천5백주년 기념 대 [심포지움]이 사계의 권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벌어져 옛 문화의 전통성을 계승시키려는 군민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하 부여, 대전 내용 생략)
그러나 한두 가지를 제외하고 공주, 부여지방의 행사가 비슷한 양상을 보였고 새로이 재발, 재현되는 행사가 없었다는 데 아쉬운 여운을 남긴 것 같다.
특히 백제시대 부여지방에서 크게 떨쳤던 은산별신제 같은 민속문화가 7년여 전부터 연구 보조비가 끊겼는가 하면 백제문화제에 끼지도 못하는 푸대접을 받고 있어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게 돼 뜻있는 군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전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백제문화제는 대민홍보의 부족으로 백제문화제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시민이 있는가 하면 전야제의 초롱등 점화가 전 시가지가 아닌 목척교-도청 간에만 있었다는 점, 그리고 15일 아침엔 파손된 초롱등에 누군가 가지고 간 것까지 나타나 백제문화재의 필요성을 좀 더 인식시켰어야 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백제의 옛 수도였던 공주, 부여지방과 대전에서만 백제문화제를 벌일 게 아니라 백제권역인 논산 등 인근까지 문화제를 파급시키는 것도 연구해 봄 직한 일이다.
아무튼 찬란했던 백제문화를 전승하고 그 빛나는 얼을 되새겨 향토색 짙은 문화를 창조하는 데 좀 더 과감하고 혁신적인 문화계발 사업이 바람직하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제21회 백제문화제는 공주 천도 1천5백주년으로 예년에 없이 다채롭고 풍요롭게 베풀어진 흔적이 엿보이긴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의 문화제 중에서 공주지방의 가장행렬 가운데 공주중학생들에 의해 재현된 백제 특유의 갑옷 [명광개]가 선보였다는 점이다. 유형문화재의 빈곤으로 적잖은 애로를 겪고 있는 문화행사에선 적잖은 수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공주박물관 대강당에서 베풀어진 백제문화 대 [심포지움]을 들 수 있다. 이제까지 산발적으로 개발연구되어 온 백제문화에 대해 국내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술적인 토론을 가졌다는 데 큰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끝으로 백제시대의 민요로 사장돼 있던 산유화가 충남예총의 고증으로 개발, 일반 대중에게 선보였다는 점 등 제21회 백제문화제에선 빼어놓을 수 없는 수확이었다. 아무튼 매년 평범한 계획 속의 백제문화제를 치러왔지만 금년은 백제시대의 특유한 갑옷 [명광개] 대 [심포지움] 민속민요 산유화 등이 개발, 선을 보여 백제문화의 개발에 많은 가능성을 던져주었다고 풀이된다.


유형도서/간행물류


주제지역개발,관광


시대현대


출처기관


공개구분공개


공개비공개사유수집처 협의사항


열람조건조건없음


키워드제21회 백제문화제; 미디어; 신문/방송;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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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100020920


제목옛 문화 전승에 새 전기 신문 기사


범위와 내용1975년 10월 22일 충남일보에 게재된 '옛 문화 전승에 새 전기' 신문 기사

옛 문화 전승에 새 전기
21회 백제문화제 결산
백제인의 슬기와 지혜를 본받아 전통문화를 되살려 민족문화로 꽃피우며 진취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성화를 올린 지 금년이 스물한 돌. 제21회 백제문화제가 지난 14일 오전 10시 옛 도읍지였던 공주 봉화대에서 성화를 채화하면서 연 사흘간의 화려한 막을 올렸다. 특히 금년은 도읍지를 부여에서 공주로 옮긴 지 1천5백 년이 되는 해로서, 어느 때보다 다채롭고 푸짐한 백제문화제가 되도록 거도적인 행사 준비를 했었고 또한 스물한돌이 되면서 백제문화제를 대전에서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14일 오전 10시 공주에서 점화된 성화는 공주군청에 안치됐다가 저녁 7시 공주 읍내에 설치된 초롱등에 점화, 공주시가지를 밝혀주었고 이어 공주문화원이 주최한 꽃불놀이와 중동 로타리에서 있은 농악놀이 강강수월래 등은 옛 백제 때의 명절을 재현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14일 저녁 7시 부여읍 규산성상봉에서도 조국의 안녕과 1년의 풍요를 기원하는 삼영산제를 비롯 읍내 일원에 걸친 청사초롱행렬, 관등놀이 등으로 전야제가 피크를 이루었다.
이와 함께 대전에서도 처음으로 베풀어지는 백제문화제의 전야제에 14일 저녁 7시 서정화 충남도지사의 초롱등 점화로 도청에서부터 목척교까지의 가로등에 매어단 초롱등에 점화 축제 분위기를 돋구기도 했다.
전야제에 이어 15일 오전 10시 공주지방에선 중동 로타리로부터 백제 무사에 의해 봉송된 성화가 서 충남지사에게 전달, 공산성에 마련된 성화대에 점화됨으로써 본격적인 백제문화제의 막이 올랐고 백제의 국력을 사해에 떨친 문주왕 동성왕 삼근왕 무령왕 등 4왕의 유업을 기리는 추모제가 올려졌으며 공주북중 공주여고 공주사대부고 여학생 등이 펼치는 농악 및 고전무용이 운집한 군민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는 등 문화제의 절정을 이루었다.
이어서 백제시대의 무사 궁녀 등으로 가장한 가장행렬이 공주시가지를 누볐는데 이를 구경하러 나온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한편 저녁 7시 30분부터 초롱등 점화 행렬 꽃불연날리기, 봉화 올리기, 관등선 띄우기 등 당시의 풍류를 대부분 벌였고 저녁 8시 금강 백사장에서 있었던 낭자대군무놀이는 초롱등 행렬이 도착, 가을밤 하늘을 비추는 속에서 펼쳐져 장관을 이루었다. 또 16일에는 향토미전, 백제문화예술제 등 당시의 문화를 재현시켰고 박물관 강당에서는 천도 1천5백주년 기념 대 [심포지움]이 사계의 권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벌어져 옛 문화의 전통성을 계승시키려는 군민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하 부여, 대전 내용 생략)
그러나 한두 가지를 제외하고 공주, 부여지방의 행사가 비슷한 양상을 보였고 새로이 재발, 재현되는 행사가 없었다는 데 아쉬운 여운을 남긴 것 같다.
특히 백제시대 부여지방에서 크게 떨쳤던 은산별신제 같은 민속문화가 7년여 전부터 연구 보조비가 끊겼는가 하면 백제문화제에 끼지도 못하는 푸대접을 받고 있어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게 돼 뜻있는 군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전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백제문화제는 대민홍보의 부족으로 백제문화제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시민이 있는가 하면 전야제의 초롱등 점화가 전 시가지가 아닌 목척교-도청 간에만 있었다는 점, 그리고 15일 아침엔 파손된 초롱등에 누군가 가지고 간 것까지 나타나 백제문화재의 필요성을 좀 더 인식시켰어야 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백제의 옛 수도였던 공주, 부여지방과 대전에서만 백제문화제를 벌일 게 아니라 백제권역인 논산 등 인근까지 문화제를 파급시키는 것도 연구해 봄 직한 일이다.
아무튼 찬란했던 백제문화를 전승하고 그 빛나는 얼을 되새겨 향토색 짙은 문화를 창조하는 데 좀 더 과감하고 혁신적인 문화계발 사업이 바람직하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제21회 백제문화제는 공주 천도 1천5백주년으로 예년에 없이 다채롭고 풍요롭게 베풀어진 흔적이 엿보이긴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의 문화제 중에서 공주지방의 가장행렬 가운데 공주중학생들에 의해 재현된 백제 특유의 갑옷 [명광개]가 선보였다는 점이다. 유형문화재의 빈곤으로 적잖은 애로를 겪고 있는 문화행사에선 적잖은 수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공주박물관 대강당에서 베풀어진 백제문화 대 [심포지움]을 들 수 있다. 이제까지 산발적으로 개발연구되어 온 백제문화에 대해 국내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술적인 토론을 가졌다는 데 큰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끝으로 백제시대의 민요로 사장돼 있던 산유화가 충남예총의 고증으로 개발, 일반 대중에게 선보였다는 점 등 제21회 백제문화제에선 빼어놓을 수 없는 수확이었다. 아무튼 매년 평범한 계획 속의 백제문화제를 치러왔지만 금년은 백제시대의 특유한 갑옷 [명광개] 대 [심포지움] 민속민요 산유화 등이 개발, 선을 보여 백제문화의 개발에 많은 가능성을 던져주었다고 풀이된다.


발행처충남일보


생산자/생산기관충남일보


생산일자1975.10.22


기증자/수집처공주학연구원


주제분류지역개발,관광>관광>백제문화제


형태분류도서/간행물류>신문


시대분류현대


출처분류기관


공개구분공개


공개비공개사유수집처 협의사항


원본여부사본


열람조건조건없음


물리적 특성특이사항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