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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백제제는 흥겨웁게 신문 기사


범위와 내용1973년 9월 27일 충남일보에 게재된 ‘백제제는 흥겨웁게’ 신문 기사

백제제는 흥겨웁게
지금 공주지방에선 백제문화제 준비가 한창이라고 들린다. 예산은 2백만원에 불과하나 4왕 추모제를 비롯 불꽃놀이 등 24개 종목이나 되는 여흥까지 마련했다는 것이다.
백제제는 이 고장에서 가장 큰 문화행사로 꼽는다. 비록 향토적인 잔치라곤 하지만 거국적인 규모로 꾸려온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는 여기서도 한번 관심을 표명해 두는 것이다.
공주에다 온조왕이 정도한 후 부여에서 파국하기까지 백제는 7백년의 융성한 역사를 자랑해 왔다. 「아스가」 문화의 발상지가 다름 아닌 공주·부여라는걸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백제는 3국에서도 가장 문물이 뛰어난 나라로 그 영향은 멀리 일본에까지도 파급되었었다. 백제의 조사공이 법륭사와 사천왕사를 창건했다는 사실, 일본이 자랑하는 유전소(도자기) 또한 백제인이 건너가 전파시켜 오늘에 이르렀다는 건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그뿐인가. 일본으로 건너가 귀화한 자랑스런 후예들 중엔 아직도 천년사를 담은 족보까지 보존하고 있다니 놀랍다. 이렇듯 백제의 숨결은 오늘날 일등 국민이라 뽐내는 일본인과 그들의 문화권의 심층에까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빛나던 백제의 역사와 문물이 오랜 세월 설움을 받아온 데 대해서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이유는 극히 간단하다. 멸망국의 문물이라는 데서 그러했다. 하지만 터놓고 한번 생각을 해보자. 역사가 오랜 나라치고 흥망을 겪지 않은 예가 있었던가를 말이다. 다행하다고나 할까. 부여와 공주가 개발되면서부터 백제의 가치가 널리 알려져 간다는데 흐뭇한 생각이 앞선다. 공주 무령왕릉의 발굴에서 우리는 유폐되었던 백제의 참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었고 단장되어 가는 부여의 도시경관에선 백제의 고유미 같은 걸 재발견하게 된다.
번창했던 백제의 옛 서울 부여와 공주에선 곧 문화제가 열린다. 우리는 이 잔치에 앞서 몇 마디 주문과 희망 같은 걸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이 자랑스러운 잔치가 주최 측이나 주관 관서 당무자 개개인의 기분이나 어중간한 상식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 잔치는 적어도 학도적인 잔치라야 옳을 것이다. 백제의 후예는 너나없이 이에 참전, 뜻을 모아 축제를 즐겨야 한다. 다시 말해서 관제 문화제의 냄새 같은 걸 불식하고 민간 단체가 주도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다. 「레파토리」에서는 되도록 고전과 고증을 살려야 실감이 있을 것으로 본다. 실상 따지고 보면 문화제나 토속제 같은 것은 생활 유지의 직접적인 필요를 넘어 생활이라는 본질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하겠다. 때문에 이런 행사는 일상생활보다 일단 높은 곳에서 질서의 세계를 보여주는 데도 뜻이 있다.
토속제나 문화제가 비록 유희 형식에서 시종하는 잔치이긴 하나 옛것을 오늘에 재현시킨다는 종교적인 모습으로 해서 그 전통과 인습 같은 게 유지되어 간다고 봐서 무방하다. 어쨌든 백제문화제는 올해에도 성대하게 거행되어야 하겠다. 슬기롭고 풍요로웠던 선조들의 그때 그 모습을 오늘에 지켜보고 문화민족의 긍지를 되찾아야 할 것이라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해 둔다.
「아스카」 문화의 발상지, 오늘의 공주·부여는 차츰 경관과 고유미, 즉 백제의 가락에 젖어가고 있다. 이런 판단에 우리는 토속잔치를 통해서 대인다웠던 백제인의 슬기와 풍류 같은 걸 되새겨 한껏 즐겨볼 일이 아니겠는가.


유형도서/간행물류


주제지역개발,관광


시대현대


출처기관


공개구분공개


공개비공개사유수집처 협의사항


열람조건조건없음


키워드제19회 백제문화제; 미디어; 신문/방송; 신문


태그보기

등록번호100020902


제목백제제는 흥겨웁게 신문 기사


범위와 내용1973년 9월 27일 충남일보에 게재된 ‘백제제는 흥겨웁게’ 신문 기사

백제제는 흥겨웁게
지금 공주지방에선 백제문화제 준비가 한창이라고 들린다. 예산은 2백만원에 불과하나 4왕 추모제를 비롯 불꽃놀이 등 24개 종목이나 되는 여흥까지 마련했다는 것이다.
백제제는 이 고장에서 가장 큰 문화행사로 꼽는다. 비록 향토적인 잔치라곤 하지만 거국적인 규모로 꾸려온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는 여기서도 한번 관심을 표명해 두는 것이다.
공주에다 온조왕이 정도한 후 부여에서 파국하기까지 백제는 7백년의 융성한 역사를 자랑해 왔다. 「아스가」 문화의 발상지가 다름 아닌 공주·부여라는걸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백제는 3국에서도 가장 문물이 뛰어난 나라로 그 영향은 멀리 일본에까지도 파급되었었다. 백제의 조사공이 법륭사와 사천왕사를 창건했다는 사실, 일본이 자랑하는 유전소(도자기) 또한 백제인이 건너가 전파시켜 오늘에 이르렀다는 건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그뿐인가. 일본으로 건너가 귀화한 자랑스런 후예들 중엔 아직도 천년사를 담은 족보까지 보존하고 있다니 놀랍다. 이렇듯 백제의 숨결은 오늘날 일등 국민이라 뽐내는 일본인과 그들의 문화권의 심층에까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빛나던 백제의 역사와 문물이 오랜 세월 설움을 받아온 데 대해서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이유는 극히 간단하다. 멸망국의 문물이라는 데서 그러했다. 하지만 터놓고 한번 생각을 해보자. 역사가 오랜 나라치고 흥망을 겪지 않은 예가 있었던가를 말이다. 다행하다고나 할까. 부여와 공주가 개발되면서부터 백제의 가치가 널리 알려져 간다는데 흐뭇한 생각이 앞선다. 공주 무령왕릉의 발굴에서 우리는 유폐되었던 백제의 참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었고 단장되어 가는 부여의 도시경관에선 백제의 고유미 같은 걸 재발견하게 된다.
번창했던 백제의 옛 서울 부여와 공주에선 곧 문화제가 열린다. 우리는 이 잔치에 앞서 몇 마디 주문과 희망 같은 걸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이 자랑스러운 잔치가 주최 측이나 주관 관서 당무자 개개인의 기분이나 어중간한 상식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 잔치는 적어도 학도적인 잔치라야 옳을 것이다. 백제의 후예는 너나없이 이에 참전, 뜻을 모아 축제를 즐겨야 한다. 다시 말해서 관제 문화제의 냄새 같은 걸 불식하고 민간 단체가 주도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다. 「레파토리」에서는 되도록 고전과 고증을 살려야 실감이 있을 것으로 본다. 실상 따지고 보면 문화제나 토속제 같은 것은 생활 유지의 직접적인 필요를 넘어 생활이라는 본질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하겠다. 때문에 이런 행사는 일상생활보다 일단 높은 곳에서 질서의 세계를 보여주는 데도 뜻이 있다.
토속제나 문화제가 비록 유희 형식에서 시종하는 잔치이긴 하나 옛것을 오늘에 재현시킨다는 종교적인 모습으로 해서 그 전통과 인습 같은 게 유지되어 간다고 봐서 무방하다. 어쨌든 백제문화제는 올해에도 성대하게 거행되어야 하겠다. 슬기롭고 풍요로웠던 선조들의 그때 그 모습을 오늘에 지켜보고 문화민족의 긍지를 되찾아야 할 것이라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해 둔다.
「아스카」 문화의 발상지, 오늘의 공주·부여는 차츰 경관과 고유미, 즉 백제의 가락에 젖어가고 있다. 이런 판단에 우리는 토속잔치를 통해서 대인다웠던 백제인의 슬기와 풍류 같은 걸 되새겨 한껏 즐겨볼 일이 아니겠는가.


발행처충남일보


생산자/생산기관충남일보


생산일자1973.09.27


기증자/수집처공주학연구원


주제분류지역개발,관광>관광>백제문화제


형태분류도서/간행물류>신문


시대분류현대


출처분류기관


공개구분공개


공개비공개사유수집처 협의사항


원본여부사본


열람조건조건없음


물리적 특성특이사항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