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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특색 없는 연례행사 신문 기사


범위와 내용1971년 10월 20일 ‘특색 없는 연례행사’ 신문 기사

특색 없는 연례행사
「백제문화제」의 허와 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공주와 부여에서 제17회 백제문화제가 열렸었다. 14일 저녁 청사초롱의 점화로 시작되어 전야제까지 합치면 4일간의 행사가 되는 셈이다. 백제문화제는 진주의 개천예술제와 경주의 신라문화제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문화예술제로 손꼽히고 있어 지방적인 하나의 축제를 떠나 전국적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백제문화제를 17회째나 가졌으면서도 각종 놀이가 주가 된 축제 분위기 이외에 손꼽을 수 있는 이렇다 할 특징이나 업적이 없음은 행사 자체를 재고할 단계가 온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런대로 이번 대회에서 공주 부여 두 곳의 행사를 도가 주관하여 같은 날짜에 일관성 있게 진행한 것은 발전의 징조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이제까지는 공주와 부여에서 각각 따로 문화제 행사를 가졌었다. 문화제 행사 일자는 매년 적당한 날짜를 잡아 진행하였으며 경쟁의식까지 곁들여 일관성을 갖지 못했다.
백제의 수도 공주는 비록 50여년밖에 있지 않았지만 백제가 부족 국가에서 정부형태를 갖춘 시발점이면서 백제라는 우위성을 주장하고 부여는 7백여 년의 문화를 꽃피우게 한 백제의 핵이고 또 문화의 역사도 깊은 점에 우월의식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2곳의 행사가 일관성을 갖지 못했던 것인데 이를 이번에 통합한 것은 우선 백제문화제에 임하는 자세에서 큰 진전을 본 것이다.
일정, 예산 뒷받침 등 도서 주관한 건 다행
조금을 합쳐 1백 30만원으로 치렀다. 이런 빈약한 재정으로는 불꽃놀이다 가장행렬, 추모제 등 극히 기본적인 축제 행사 이외에 값진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17회 백제문화제는 통합하여 도가 주관한다는 원칙만 세웠을 뿐 시간이 늦어도 도에서 손을 쓰지 못하고 양군의 집행위원회가 종전대로 집행시켰다고 한다. 이런 여의치 못한 환경 속에서도 왕추모제, 백제문화 학술경연대회, 계백장군출사행렬, 낭자군무놀이 등 20여 행사를 가져 군민의 참여와 협동심을 보여주고 우리 고대문화의 귀한 것을 재현시켜 현대문화에 조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업적과 노고는 높이 찬양받고 있다. 거리거리에 걸려있는 청사초롱, 불꽃놀이, 농악놀이, 봉화 올리기, 각종 가장행렬 등은 완전히 축제 무드에 젖게 한다. 성화를 계룡산 봉화대에서 태양열로 점화시켜 백제 무장에 의해 부여까지 호송함은 행사를 더 의의 있고 엄숙하게 했다.
또 고전무용낭자대군무놀이, 백제사극발표회, 백제문화전시회, 공주거히놀이 등은 1천 5백년 전 백제 사회를 되새겨주고 궁도대회, 백제장사뽑기 씨름대회는 「스포츠」까지 곁들이며 백제의 밤에서 가진 진홍섭 이대 교수의 무령왕릉 발굴의 미술사적 고찰이라는 학술 강연과 백제의 밤 한글 백일장 등이 있었지만 이런 행사를 좀 더 풍성하게 하여 알을 채워야만 할 것이다. 백제 학술강연을 대대적으로 확대하여 전국의 역사 석학들이 관심을 갖고 모여 토의하고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일본에서도 백제문화에 큰 관심이 있으니 일본학자가 참여케 되는 국제적인 학술강연회로 발전시킬 여지도 있다. 백제의 밤이라든가 백일장도 마찬가지다.
찬란했던 백제인 생활 모습을 재현
먼저 공주의 행사 중 공주박물관에서 공개되는 무령왕릉 유물의 특별전시는 세계적인 주목과 학계의 비상한 주시리에 발현된 왕릉의 부장품을 백제문화제 기간 중에 한국 초유의 역사적인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뜻깊은 일이다. 지석은 삼국 왕릉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일의 금석문 자료로 무령왕릉의 축조연대와 내장된 각종 유형무형의 문화재와 백제 조형 미술품의 절대연대를 설정하는 기준이 되는 보물 중 보물로서 그 학술적인 가치는 크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은팔찌의 조각 기교와 “경자년 2월 다리작 대부인분 2백주이”의 명문은 백제인의 예술가관을 새롭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를 알게 되었다. 또한 왕과 왕비의 금제관식은 신라 금관과는 기원을 달리한 양식으로 조영되었음이 특이하며 주목되고 있다. 그리고 청자육이호와 청자사이수병 및 백자등잔은 흔히 고려 청백자로 생각하는 관념을 불식하여 이미 백제시대에 사용되었음이 밝혀진 귀중한 자료를 알게 되었다.
기타 많은 미술 공예품의 전시는 빈약한 백제 조형미술의 풍부한 자료를 온 국민에게 알리게 된 것은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또 무령왕릉의 미술사적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이대 진홍섭 교수와 김영배 공주박물관의 학술강연회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부장품을 하나하나 들어 미술품의 선과 균형의 미는 세계적인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특히 왕릉을 축조한 건축술과 금속 세공품은 고구려 신라에 비하여 우수한 수준을 보여준다고 지적하였다.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무령왕릉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올바르게 주지시킨 것은 커다란 수확이다.
그리고 공주에 이도한 문주왕부터 백제 중흥의 기반을 닦은 삼근·동성·무령까지 4왕의 추모제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올린다는 뜻도 있으나 그보다 고구려 남침으로 약화된 국력을 회복코저 내정을 개혁하고 제도를 혁신하여 전투 국가로서의 성격을 갖추었다. 국제적으로는 중국 남조와 친밀을 도모하여 자체 내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코저 뛰어난 지략을 발휘하였으며 이러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동성·무령왕의 정신을 높이 우러러보아 지금 우리들의 자주국방 기본자세를 확립하는 데 정신적인 지주로 삼아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추모제를 올린 것이다.
또한 백제가장행렬은 백제인의 생활 모습을 돌이켜 보게 하며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그 당시 현실에 적응시켜 자기 문화로 형성시킨 능력을 다시 평가하여 지금 온 국민이 외국 문화를 수용하는 태도로 확립시키는 좋은 행사라고 본다. 기타 농악놀이, 불꽃놀이, 백제의 밤 등의 행사는 백제 민속의 진수를 이해하고 체득하는 데 의의가 있다.


유형도서/간행물류


주제지역개발,관광


시대현대


출처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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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비공개사유수집처 협의사항


열람조건조건없음


키워드제17회 백제문화제; 미디어; 신문/방송;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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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100020889


제목특색 없는 연례행사 신문 기사


범위와 내용1971년 10월 20일 ‘특색 없는 연례행사’ 신문 기사

특색 없는 연례행사
「백제문화제」의 허와 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공주와 부여에서 제17회 백제문화제가 열렸었다. 14일 저녁 청사초롱의 점화로 시작되어 전야제까지 합치면 4일간의 행사가 되는 셈이다. 백제문화제는 진주의 개천예술제와 경주의 신라문화제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문화예술제로 손꼽히고 있어 지방적인 하나의 축제를 떠나 전국적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백제문화제를 17회째나 가졌으면서도 각종 놀이가 주가 된 축제 분위기 이외에 손꼽을 수 있는 이렇다 할 특징이나 업적이 없음은 행사 자체를 재고할 단계가 온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런대로 이번 대회에서 공주 부여 두 곳의 행사를 도가 주관하여 같은 날짜에 일관성 있게 진행한 것은 발전의 징조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이제까지는 공주와 부여에서 각각 따로 문화제 행사를 가졌었다. 문화제 행사 일자는 매년 적당한 날짜를 잡아 진행하였으며 경쟁의식까지 곁들여 일관성을 갖지 못했다.
백제의 수도 공주는 비록 50여년밖에 있지 않았지만 백제가 부족 국가에서 정부형태를 갖춘 시발점이면서 백제라는 우위성을 주장하고 부여는 7백여 년의 문화를 꽃피우게 한 백제의 핵이고 또 문화의 역사도 깊은 점에 우월의식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2곳의 행사가 일관성을 갖지 못했던 것인데 이를 이번에 통합한 것은 우선 백제문화제에 임하는 자세에서 큰 진전을 본 것이다.
일정, 예산 뒷받침 등 도서 주관한 건 다행
조금을 합쳐 1백 30만원으로 치렀다. 이런 빈약한 재정으로는 불꽃놀이다 가장행렬, 추모제 등 극히 기본적인 축제 행사 이외에 값진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17회 백제문화제는 통합하여 도가 주관한다는 원칙만 세웠을 뿐 시간이 늦어도 도에서 손을 쓰지 못하고 양군의 집행위원회가 종전대로 집행시켰다고 한다. 이런 여의치 못한 환경 속에서도 왕추모제, 백제문화 학술경연대회, 계백장군출사행렬, 낭자군무놀이 등 20여 행사를 가져 군민의 참여와 협동심을 보여주고 우리 고대문화의 귀한 것을 재현시켜 현대문화에 조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업적과 노고는 높이 찬양받고 있다. 거리거리에 걸려있는 청사초롱, 불꽃놀이, 농악놀이, 봉화 올리기, 각종 가장행렬 등은 완전히 축제 무드에 젖게 한다. 성화를 계룡산 봉화대에서 태양열로 점화시켜 백제 무장에 의해 부여까지 호송함은 행사를 더 의의 있고 엄숙하게 했다.
또 고전무용낭자대군무놀이, 백제사극발표회, 백제문화전시회, 공주거히놀이 등은 1천 5백년 전 백제 사회를 되새겨주고 궁도대회, 백제장사뽑기 씨름대회는 「스포츠」까지 곁들이며 백제의 밤에서 가진 진홍섭 이대 교수의 무령왕릉 발굴의 미술사적 고찰이라는 학술 강연과 백제의 밤 한글 백일장 등이 있었지만 이런 행사를 좀 더 풍성하게 하여 알을 채워야만 할 것이다. 백제 학술강연을 대대적으로 확대하여 전국의 역사 석학들이 관심을 갖고 모여 토의하고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일본에서도 백제문화에 큰 관심이 있으니 일본학자가 참여케 되는 국제적인 학술강연회로 발전시킬 여지도 있다. 백제의 밤이라든가 백일장도 마찬가지다.
찬란했던 백제인 생활 모습을 재현
먼저 공주의 행사 중 공주박물관에서 공개되는 무령왕릉 유물의 특별전시는 세계적인 주목과 학계의 비상한 주시리에 발현된 왕릉의 부장품을 백제문화제 기간 중에 한국 초유의 역사적인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뜻깊은 일이다. 지석은 삼국 왕릉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일의 금석문 자료로 무령왕릉의 축조연대와 내장된 각종 유형무형의 문화재와 백제 조형 미술품의 절대연대를 설정하는 기준이 되는 보물 중 보물로서 그 학술적인 가치는 크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은팔찌의 조각 기교와 “경자년 2월 다리작 대부인분 2백주이”의 명문은 백제인의 예술가관을 새롭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를 알게 되었다. 또한 왕과 왕비의 금제관식은 신라 금관과는 기원을 달리한 양식으로 조영되었음이 특이하며 주목되고 있다. 그리고 청자육이호와 청자사이수병 및 백자등잔은 흔히 고려 청백자로 생각하는 관념을 불식하여 이미 백제시대에 사용되었음이 밝혀진 귀중한 자료를 알게 되었다.
기타 많은 미술 공예품의 전시는 빈약한 백제 조형미술의 풍부한 자료를 온 국민에게 알리게 된 것은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또 무령왕릉의 미술사적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이대 진홍섭 교수와 김영배 공주박물관의 학술강연회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부장품을 하나하나 들어 미술품의 선과 균형의 미는 세계적인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특히 왕릉을 축조한 건축술과 금속 세공품은 고구려 신라에 비하여 우수한 수준을 보여준다고 지적하였다.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무령왕릉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올바르게 주지시킨 것은 커다란 수확이다.
그리고 공주에 이도한 문주왕부터 백제 중흥의 기반을 닦은 삼근·동성·무령까지 4왕의 추모제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올린다는 뜻도 있으나 그보다 고구려 남침으로 약화된 국력을 회복코저 내정을 개혁하고 제도를 혁신하여 전투 국가로서의 성격을 갖추었다. 국제적으로는 중국 남조와 친밀을 도모하여 자체 내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코저 뛰어난 지략을 발휘하였으며 이러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동성·무령왕의 정신을 높이 우러러보아 지금 우리들의 자주국방 기본자세를 확립하는 데 정신적인 지주로 삼아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추모제를 올린 것이다.
또한 백제가장행렬은 백제인의 생활 모습을 돌이켜 보게 하며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그 당시 현실에 적응시켜 자기 문화로 형성시킨 능력을 다시 평가하여 지금 온 국민이 외국 문화를 수용하는 태도로 확립시키는 좋은 행사라고 본다. 기타 농악놀이, 불꽃놀이, 백제의 밤 등의 행사는 백제 민속의 진수를 이해하고 체득하는 데 의의가 있다.


발행처미상


생산자/생산기관미상


생산일자1971.10.20


기증자/수집처공주학연구원


주제분류지역개발,관광>관광>백제문화제


형태분류도서/간행물류>신문


시대분류현대


출처분류기관


공개구분공개


공개비공개사유수집처 협의사항


원본여부사본


열람조건조건없음


물리적 특성특이사항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