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도서/간행물류 백제 야경으로 절정 신문 기사

제목백제 야경으로 절정 신문 기사


범위와 내용1968년 10월 11일 대전일보에 게재된 ‘백제 야경으로 절정’ 신문 기사

백제 야경으로 절정
인파 8만 붐벼 불꽃놀이 등은 장관
백제의 얼을 되새기는 3번째 백제문화제는 9일 밤 7시부터 펼쳐진 백제 야경 행사가 성대히 진행됨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8일의 전야제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구경꾼으로 9일 밤의 공주 읍내는 7-8만(평상 3만)의 인파가 붐비고 집집의 처마마다 켜는 청사초롱으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청사초롱 재점화로 시작된 이날의 백제 야경 행사는 공주여고의 낭자대군무와 봉화, 불꽃놀이 등 각종 행사가 밤 11시까지 계속됐다. 금강물이 불어 계획을 변동하는 등 차질이 있었으나 아무런 사고 없이 대제전의 중반이 끝났다.
낭자군무놀이는 금강물이 갑자기 불어나 공주고등 운동장에서 펼쳐졌는데 밤 8시부터 약 1시간 20분 동안 5만여 명의 관중과 3천의 남학생들이 등을 밝힌 속에 공주여중고생 5백명에 의해 전개됐다. 전장에서 돌아온 백제 무사들의 피로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당시의 아가씨들이 자진하여 춤추었다는 이 낭자대군무는 타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웅진성 고유의 것을 백제제 최대의 꽃으로 불리고 있다.
밤 8시부터 공주읍 주변의 11개 산봉우리에 일제히 봉화 불꽃이 솟았다. 통신 시설이 없던 당시의 최신속 통신수단인 이 봉화는 10일 아침까지 계속 불탔다. 불꽃놀이는 봉황산 꼭대기에서 30발이 올려져 백제의 고혼이 맴도는 공산성 야경을 한층 현란하게 장식했다.
공주읍내 중고생 3천여 명이 손에손에 초롱등을 켜들고 시내를 행진하여 공주시내거리를 휩쓸었다. 금강물 위에서 펼쳐질 관등선띄우기는 8일의 비로 금강물이 갑자기 불어나 시행하지 못했다.
뒤죽박죽 행사 백제제 주변
9일 상오 10시에 서막을 연 공주의 백제제는 일기불순과 예산부족으로 여러 면에서 뒤죽박죽이 된 행사였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때늦은 비로 본전은 우중에서 강행군으로 끝내긴 했으나 필요 없는 학생동원으로 노천에선 학생들만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관중들 마음을 애처롭게 했는데 고전무용을 한 유치원 국민교 여중고교 학생들이 이번에 새로지어 입은 무용복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춤을 추는 것을 보고는 모두 즐겁기는커녕 가슴이 아프다고 한 마디씩. 무용복 한 벌만 들자면 3천원 정도가 드는데 단 몇 10분을 위한 각 가정의 지출로써는 너무 과대했다는게 일반의 평이고 주민들에게 과다한 부담을 지우고 아무 실속없는 행사를 해서는 무얼하느냐?고 날카로운 평이 나오기도.
이번 공주 제전은 도비 20만원, 군비 30만원, 지방 유지 기부 50만원 총 1백만원의 예산으로 집행됐는데 행사가 끝나지도 않은 9일 밤에 벌써 예산액을 20-30만원을 초과했다는게 집행위의 실무자들의 비명인데 뜻있는 인사들은 별로 실속없는 행사만 벌일 것이 아니라 이 에산으로 백제전시관 같은 것을 공주에 설치하는 것이 더 뜻있지 않겠느냐고들 의견의 일치를 보이기도.


유형도서/간행물류


주제지역개발,관광


시대현대


출처기관


공개구분공개


공개비공개사유수집처 협의사항


열람조건조건없음


키워드제14회 백제문화제; 미디어; 신문/방송; 신문


태그보기

등록번호100020876


제목백제 야경으로 절정 신문 기사


범위와 내용1968년 10월 11일 대전일보에 게재된 ‘백제 야경으로 절정’ 신문 기사

백제 야경으로 절정
인파 8만 붐벼 불꽃놀이 등은 장관
백제의 얼을 되새기는 3번째 백제문화제는 9일 밤 7시부터 펼쳐진 백제 야경 행사가 성대히 진행됨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8일의 전야제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구경꾼으로 9일 밤의 공주 읍내는 7-8만(평상 3만)의 인파가 붐비고 집집의 처마마다 켜는 청사초롱으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청사초롱 재점화로 시작된 이날의 백제 야경 행사는 공주여고의 낭자대군무와 봉화, 불꽃놀이 등 각종 행사가 밤 11시까지 계속됐다. 금강물이 불어 계획을 변동하는 등 차질이 있었으나 아무런 사고 없이 대제전의 중반이 끝났다.
낭자군무놀이는 금강물이 갑자기 불어나 공주고등 운동장에서 펼쳐졌는데 밤 8시부터 약 1시간 20분 동안 5만여 명의 관중과 3천의 남학생들이 등을 밝힌 속에 공주여중고생 5백명에 의해 전개됐다. 전장에서 돌아온 백제 무사들의 피로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당시의 아가씨들이 자진하여 춤추었다는 이 낭자대군무는 타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웅진성 고유의 것을 백제제 최대의 꽃으로 불리고 있다.
밤 8시부터 공주읍 주변의 11개 산봉우리에 일제히 봉화 불꽃이 솟았다. 통신 시설이 없던 당시의 최신속 통신수단인 이 봉화는 10일 아침까지 계속 불탔다. 불꽃놀이는 봉황산 꼭대기에서 30발이 올려져 백제의 고혼이 맴도는 공산성 야경을 한층 현란하게 장식했다.
공주읍내 중고생 3천여 명이 손에손에 초롱등을 켜들고 시내를 행진하여 공주시내거리를 휩쓸었다. 금강물 위에서 펼쳐질 관등선띄우기는 8일의 비로 금강물이 갑자기 불어나 시행하지 못했다.
뒤죽박죽 행사 백제제 주변
9일 상오 10시에 서막을 연 공주의 백제제는 일기불순과 예산부족으로 여러 면에서 뒤죽박죽이 된 행사였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때늦은 비로 본전은 우중에서 강행군으로 끝내긴 했으나 필요 없는 학생동원으로 노천에선 학생들만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관중들 마음을 애처롭게 했는데 고전무용을 한 유치원 국민교 여중고교 학생들이 이번에 새로지어 입은 무용복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춤을 추는 것을 보고는 모두 즐겁기는커녕 가슴이 아프다고 한 마디씩. 무용복 한 벌만 들자면 3천원 정도가 드는데 단 몇 10분을 위한 각 가정의 지출로써는 너무 과대했다는게 일반의 평이고 주민들에게 과다한 부담을 지우고 아무 실속없는 행사를 해서는 무얼하느냐?고 날카로운 평이 나오기도.
이번 공주 제전은 도비 20만원, 군비 30만원, 지방 유지 기부 50만원 총 1백만원의 예산으로 집행됐는데 행사가 끝나지도 않은 9일 밤에 벌써 예산액을 20-30만원을 초과했다는게 집행위의 실무자들의 비명인데 뜻있는 인사들은 별로 실속없는 행사만 벌일 것이 아니라 이 에산으로 백제전시관 같은 것을 공주에 설치하는 것이 더 뜻있지 않겠느냐고들 의견의 일치를 보이기도.


발행처대전일보


생산자/생산기관대전일보


생산일자1968.10.11


기증자/수집처공주학연구원


주제분류지역개발,관광>관광>백제문화제


형태분류도서/간행물류>신문


시대분류현대


출처분류기관


공개구분공개


공개비공개사유수집처 협의사항


원본여부사본


열람조건조건없음


물리적 특성특이사항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