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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의 영은사 원통전. 보수하기 전의 모습이다. 영은사는 현존하는 공산성 내의 사찰이다.
1992년의 영은사 원통전. 보수하기 전의 모습이다. 영은사는 현존하는 공산성 내의 사찰이다.
1992년의 영은사 원통전. 보수하기 전의 모습이다. 영은사는 현존하는 공산성 내의 사찰이다.
진남루 앞 성황당. 정리된 모습이며, 돌로 쌓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때문인지 나무를 벤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성동에서 진남루로 오르는 길 옆에는 점을 보는 무속인의 집이 있었다. 지금은 성황당도 헐리고 무속집도 없어졌다.
공산성 진남루 앞에 언제부터인지 돌로 쌓은 성황당이 있었다. 한 무속인이 정성을 들이는 장면.
공산성 마을 주변에서 고구마를 경작하고 이를 수확하는 주민. 고구마 경작이 불법이라며 얼굴을 찍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산성마을의 한 부부가 장작을 패는 모습이다. 잘려진 나무를 도끼로 내려치는 남편에게 급하게 뭐라고 지시하는 아내의 표정과 달리 남편은 여유로운 표정이다.
마을 일부는 헐렸는데 아직 이주하지 못한 주민과 아이들의 모습이 그림자로 길게 남았다.
마을 일부는 헐렸는데 아직 이주하지 못한 주민과 아이들의 모습이 그림자로 길게 남았다.
아직 떠나지 못한 집의 아이들이다. 앞의 공터에는 집을 헐은 흔적이 보인다.
벽시계가 4시 2분 전을 가리키고 ‘58 성안마을길’ 표시판이 공허하다.
마을을 떠난 빈 집에 주인없는 봉숭아꽃이 속절없이 예쁘게 피었다. 손톱에 물들일 아이들도 없는데
한여름 오후, 이창곤씨 등 너머로 햇살이 비추이고 길게 내려 앉은 그림자가 곧 마을을 떠나야할 이창곤씨의 시름을 대신하고 있는 듯.
우리나라 시골집에는 거의 가족 사진이 걸려 있다. 조부모, 부모와 아들 딸 결혼식 사진에서부터 손자들 사진까지. 사진 중앙이 이창곤씨이고 오른쪽은 이창곤씨 부친이고 오른쪽은 부인이다.
산성마을 주민들은 철거가 결정되기 전부터 집 수리는 생각도 못하고 보상문제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이창곤씨 내외가 거주하는 안방을 촬영하기 위해 어렵게 허락을 받아내던 기억이 새롭다. 벽에 걸린 달력의 ‘회춘한약방’의 이름이 웃음을 자아 낸다. 그 한약방에 가면…
마을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과 주민들. 한 여름이지만 에어콘이 없어 대개 밖으로 나와서 더위를 식힌다. 오른쪽 의자에 앉은 하얀 수염의 주민이 이창곤씨.
마을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과 주민들. 한 여름이지만 에어콘이 없어 대개 밖으로 나와서 더위를 식힌다. 오른쪽 의자에 앉은 하얀 수염의 주민이 이창곤씨.
금서루를 지나 산성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이다. 오른쪽 집에는 만(卍)자 글씨를 쓴 깃발이 보이는데 이는 절이 아니고 점을 보는 집이다.
금서루를 지나 산성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이다. 오른쪽 집에는 만(卍)자 글씨를 쓴 깃발이 보이는데 이는 절이 아니고 점을 보는 집이다.
산성마을의 어느 집 입구. 대문이랄 것도 없이 좁은 계단을 오르면 바로 방이다. 한겨울이어서 30촉 백열등이 따뜻하게 느껴지고 날이 저물자 대문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의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1990년대 초 산성마을. 이때만 해도 어린이들의 뛰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