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전체 51679건
공산성의 쌍수정은 조선 16대 국왕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난 햇을 때, 나무에 기대어 난의 평정소식을 들었다는 유지를 기념하기 위해 1734년(영조 10) 충청도관찰사 이수항이 건립한 누정이다. 엽서 속 모습은 오늘날과 다르게 쌍수정 아래 사적비각 쪽에서…
일제강점기 공산성 내 영은사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본 자료는 제2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1921년 공주를 방문했을 당시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이다.
공산성에서 금강을 향해 북향으로 지어진 영은사는 1457년(세조 3) 묘은사(妙隱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후, 임진왜란 때 승군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공산성에서 금강을 향해 북향으로 지어진 영은사는 1457년(세조 3) 묘은사(妙隱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후, 임진왜란 때 승군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조선후기 충청병영의 중군영지에 해당하는 이곳은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가 있는 장소이다. 1895년 갑오개혁에 따라 전국의 산성과 군영을 폐지하면서 이곳의 군영 관련시설은 점차 없어졌다. 이후 공주 갑부 김갑순에게 불하되면서 민가와 시장이 들어서 성안마을이 형성되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웅심각 전경이다. 사진 뒷면 메모에 의하면 1933년 11월경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웅심각 계단 위에 신원미상의 남성이 서 있다. 웅심각은 광복 이후 김구에 의해 광복루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 졌다.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일제강점기 공산성 광복루에서 금강을 바라본 모습이다. 본 엽서의 특이점은 좌우가 반전된 촬영사진을 그대로 사용하여 제작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사진기는 피사체를 촬영하면 자신이 바라보는 것과 같이 상이 형성되지만, 당시에는 유리건판과 같이 좌우가 반전된 형태로 상이…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는 백제 웅진도읍기 산성이 축조되었을 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루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은 식민지정책에 따라 사적지를 공원화 하여 '산성공원'이라 불리었다. 엽서의 상단에 68년 간 백제의 왕성이었다는 사실과 진남루의 규모가 붉은 글씨로…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는 백제 웅진도읍기 산성이 축조되었을 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루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은 식민지정책에 따라 사적지를 공원화 하여 '산성공원'이라 불리었다. 엽서의 상단에 68년 간 백제의 왕성이었다는 사실과 진남루의 규모가 붉은 글씨로…
일제강점기 공산성 진남문의 여름철 산록이 우거진 모습을 배경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본 자료는 제2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1921년 공주를 방문했을 당시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문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문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본 자료는 500008187과 복본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문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성문 안쪽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비석이 있으며, 성문 밖의 진입로가 정비되기 이전의 모습인 것으로 보아 1920년대 초, 공산성 공원화 정비 이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1934년 ‘부여고적보존회’에서 발간한 에 실린 공산성 공북루 전경이다. 사진에는 공북루를 홍북루(洪北樓)라고 잘못 기재하고 있다. 금강 북단에서 찍은 사진으로 공북루와 월파당, 그리고 성안마을에 자리한 민가들의 초가지붕이 보인다. 사진 우측에는 쌍수정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현재의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과 배다리의 모습이다. 멀리 쌍신동의 정안천 제방과 연미산 능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교가 가설된 1920년부터 금강교가 가설되기 전인 1933년 이전의 모습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공주 금강교의 모습이다. 다리 우측으로 '소화8년 10월 준공' 즉, 1933년 10월이라는 준공연도를 정확히 기입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 금강교의 모습으로 공산성에서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