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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명남학교 3회 졸업생들의 사진이다. 사진 속 인물은 왼쪽에서부터 안성호, 김성만, 박준익, 송원돈, 안무성, 이일달, 반원규이다.
1910년 3월 촬영한 영명학교 제3회 졸업생들의 단체사진이다. 1910년 3월 거행된 제3회 졸업식에서는 보통과 6명, 2년제 특별 중학 수업생 1명이 졸업하였다. 사진 속 인물은 왼쪽부터 안성호, 김성만, 박준익, 송원돈, 안무성, 이일달, 박원규이다.
1910년대 초반 공산성 공북루 앞 산성나루터를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북루와 지금의 전막부근을 오가는 나루터는 흔히 산성나루로 불렸는데, 엽서 속에서는 '쌍수산성 제2도장(渡場)'이라 표기하여 공산성에는 여러 개의 나루터가 있었음을 알 수…
1917년 충청남도 도세일반 전면부에 수록된 도내 각지역의 대표사진 중 공주 마곡사의 모습이다. 본 자료의 제목에 따르면 '마곡사(충청남도 내 총본산)-소재지 공주군 사곡면'이라고 적혀있다. 대웅보전과 대광보전, 마곡사 다보탑의 모습이 산세를 따라 이어진다. 자료 좌측…
1917년 충청남도 도세일반 전면부에 수록된 도내 각지역의 대표사진 중 공주시가 전경사진이다. 오늘날 선교사 묘역 부근에서 공주영명학교와 3.1중앙공원, 시가지, 공산성, 금강 방향을 촬영한 것이다. 본 자료의 제목에 따르면 '공주시가지와 산성공원을 바라본 모습이고,…
1910년대 금강의 나루터와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 전경이다. 금강은 예로부터 각종 물산을 실어나르는 수운로로서 그 이용이 매우 활발해 주요 교통로 역할을 수행했다. 한편 엽서 중앙에는 1915년 11월 4일 교토에서 열린 다이쇼(大正)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1910년대 공주의 누에고치 공판장 모습이다. 본 자료는 2006년 발행된 충남잠업사에서 발췌했다.
1916년 3월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고적조사도보에 수록된 부여 부근의 백제유적분포도이다.
사진 속 인물 중 두번재줄의 왼쪽에서 두번째는 조병옥 박사로 영명학교 2회 졸업생이다. 세 번째는 우리암 선교사, 네번재는 우애리시 선교사이다.
1909년에 졸업한 영명학교 제2회 졸업생들과 교직원들의 단체사진이다. 가운데 우리암과 우애리시 부부를 중심으로 3열로 앉아있다. 우리암 부부의 바로 왼쪽에 있는 인물이 독립운동가이자 해방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조병옥 박사이고, 바로 오른쪽은 논산 출신의…
영명학교 우리암 선교사의 부인 우애리시 선교사이다. 우리암 선교사는 1909년 영명학교라는 교명으로 정식 인가 받아 학교를 설립하여 심상과와 고등과를 운영하였다. 명선여학당도 영명여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영명남학교와 대등하게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공주학연구원 아카이브팀에서 발행한 자료총서로 1910년대 일제의 민간인 사찰기록인 주막담총의 공주부분을 번역 및 분석한 자료이다.
공주학연구원 아카이브팀에서 발행한 자료총서로 1910년대 일제의 민간인 사찰기록인 주막담총의 공주부분을 번역 및 분석한 자료이다.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서 바라본 1910년대 전반기 충남도청 부근 시가지이다. 공주 봉황산 아래 조선시대에 조성된 충청감영과 공주목을 잇는 관아대로는 충남도청과 공주군청을 이어주는 도로로 변화했다. 그리고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대로 주변에는 상가와 여관 등…
1916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공주 공산성 전경의 모습이다. 본 사진은 금강 북단의 현재 미르섬 부근에서 공산성의 북문 공북루 방면을 바라본 것이다. 당시 공산성 내 수목이 가꿔지지 않은 민둥산의 형태를 띤 것이 시대의 특성을 보여준다.
1916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고적도보의 신원사 5층석탑의 모습이다.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고적도보 제6집 중 마곡사 5층석탑의 모습이다. 석탑 옆에 선 사람 모습과 비교하면 석탑의 규모를 체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