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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③ 이 길에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도 가끔 찾아오나 보다.
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④ 공주보를 건너면 이런 안내판이 있다. 공주보가 봉황의 형상을 본뜬 것이란다.
쌍수정은 1911년 공주를 방문한 독일인 신부 베버가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공산성에서 유명한 장소이다. 그는 "우묵땅에는 울타리를 두른 비각이 있었고, 그 안에는 큰 거북 등에 비석이 서 있었다"라는 기록을 통해 쌍수정 사적비도 언급했다. 본 자료에서는 쌍수정 누각에…
일제강점기 현재의 공주사대부고 자리에 위치해있던 충청남도 도청 정문을 배경으로 제작된 사진그림엽서이다. 문루의 명칭이 '포정사'에서 '금남루(錦南樓)'로 개칭되었다. 이후 1928년 낙후되었다는 이유로 철거되었다. 금남루 옆 2층의 콘크리트 골조로 건축된…
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⑤ 길 건너편에 역시 고마나루 명승길 안내도가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 공산성 내 위치한 쌍수정을 배경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쌍수정과 밑에 위치한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⑥ 이 길을 걸어야 한다. 인도는 없고 차들은 있는 힘껏 달리는 길이다.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1910년대 초반 공산성 공북루 앞 산성나루터를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북루와 지금의 전막부근을 오가는 나루터는 흔히 산성나루로 불렸는데, 엽서 속에서는 '쌍수산성 제2도장(渡場)'이라 표기하여 공산성에는 여러 개의 나루터가 있었음을 알 수…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 지방법원에 만개한 벚꽃을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주지법 주변에는 벚나무가 많아 공주의 주요 벚꽃 명소 중 하나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공주 계룡산 단풍나무 숲길 모습이다. 단풍놀이를 즐기기 위해 계룡산을 찾은 지역유지와 일본인으로 추정된다. 우측의 조선인과 대비를 이루는 점이 인상적이다.
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⑥ 이 길을 걸어야 한다. 인도는 없고 차들은 있는 힘껏 달리는 길이다.
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⑦ 휘어진 길에 아까시꽃이 피어 있다. 그런데 언제 차가 튀어 나올지 모르는 길이라 조금 무섭다.
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⑧ 휘어지고 경사진 길을 올라서면 거기도 아까시꽃이 향기롭게 피어 있다.
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⑨ 별로 봐주는 이는 없는 곳일 텐데 작은 꽃밭이 있다. 오래 전에 만들고 방치된 듯하다.
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⑩ 저기 집이 보이는 곳이 옛날에 배가 다니던 나룻터이다. 곰나루와 연결된 곳이다.
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⑪ 개가 심심한지 열렬히 반긴다.
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⑫ 완벽하게 차만 다니도록 만들어진 부분이다.
고마나루 명승길(공주보-연미산)⑫ 완벽하게 차만 다니도록 만들어진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