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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3.1중앙공원 유관순 동상 부근에서 내려 본 공주시가지의 풍경을 담은 파노라마엽서이다. 나무로 일부가 가려졌지만 시가지를 빼곡하게 채운 광공서와 상점, 민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충남도청 포정사와 감영길을 중심으로 왼편으로 6.25 한국전쟁으로 무너진 2층의…
남궁화가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쓴 보덕일지로, 이천 협천, 공주 정안에 있을 때 쓴 일지이다. 백지에 칸 없이 하루 일과를 기재하였다. 특히 하루 일과와 관련된 장소를 서두부분에 함께 기재하여 일지를 기록한 당일에 어느 곳을 다녀왔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로, 감영과 본아(목관아), 중군의 관직명이 담겨 있다. 관직명 옆에는 그 인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숫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범람한 제민천 하류에서 바라본 공주시가지 모습이다. 범람지 위쪽으로 공주 갑부 김갑순이 건립한 사설시장과 봉황산 아래 공주지방법원을 비록하여 시가지의 모습이 잘 보인다. 무엇보다 금강이 범람하여 강물이 산성정의 시장 근처까지 차올라 배가 드나드는 모습을 볼…
1961년 공주중학교 제1학년 입학자 전형시험에 합격했음을 증명하는 입학시험합격증이다. 출신국교 및 수험번호, 생년월일, 성명 등이 기재되어 있다.
공주영명중학교 서무과에서 1952년에 발행한 수업료 영수증이다. 영수증에 의하면 청구한 수업료는 11월분으로, 일금 이만오천원을 청구하였다. 자료 하단에는 영수받은 학생의 성명이 적혀 있다.
사학연구' 제60호, 한국사학회에서 투고한 2000년 5월 발행한 글을 프린트하여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편철한 것이다. 백제 무령왕의 출생에 관한 글이다.
유구국민학교에서 사용하던 생활기록부 양식이다. 문서 좌측상단에는 재학을 증명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하단으로 생활기록부를 구성하는 학적사항, 출결사항, 신체발달상황, 행동발달상황, 교과학습상황 등을 기재할 수 있는 란이 마련되어 있다.
1995년 공주대학교 컴퓨터 동아리인 Soft에서 동아리원이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마음의 창이란 노트이다.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50주년 기념집 - 4H조 인터뷰(문경호)
1910년대 말경, 봉황산 아래 위치한 충남도청 중심의 공주 시가지 모습이다. 엽서에는 당대의 인물이 작성한 수비대와 도청, 법원, 이름난 요정 등 주요명소와 함께 '앵산공원에서 공주를 바라보며'라는 친필이 남아있다.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는 석가불과 약사불, 아미타불이 모셔진 대웅보전과 비로자나불이 모셔진 대광보전이 존재한다. 대광보전 마당에는 라마교 양식의 풍마동이 올려진 5층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현재는 일제강점기 때보다 탑의 위치가 희지천 쪽으로 남진했음을 알 수 있다.
1975.12.13 공주문화원 주최로 중앙극장에서 진행한 제1회 연세음대 초청음악회의 당일 집행 계획서이다. 본 자료에는 당일 예정시간표와 계획표가 수록되어 있으며, 무대설치와 각종 동선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행사장의 약도를 간략하게 수록했다.
화마루공소 구술조사 사례자인 최인철의 2005년 화마루공소 회장 임명장이다. 최인철은 모태 가톨릭 신앙인으로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화마루공소 회장을 5회 역임하였다.
1993년 충청남도 제39회 과학전시회에 공주금학국민학교 6학년 양우석, 이영진 학생이 '클로렐라 배양을 통한 물의 오염도 연구'에 관한 작품을 출품하여 우수상을 수여받았다.
1996년 2월 3일 시행된 공주향토문화연구회의 공문이다. 지금의 교동 175-7번지(현 대우교동 아파트)에 고층 아파트 건립될 경우 공주시내 문화재 환경에 저해되는지를 묻는 공주시 도시과 및 문화관광과의 공문에 화답하는 공주향토문화연구회의 회신공문이다.…
1972년 제33회 공주 관내 친목배구대회에 초청하는 안내문이다. 당시 09/17 공주고등학교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본 대회는 우천으로 인해 연기되었다.
충청남도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위원목록, 진행부서일람표, 행사일정표, 공주시와 부여군의 예산내역을 수록함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행사계획과 행사종목, 종목별 세부계획, 역사문화행렬 추진계획, 연혁을 수록함
전 공주교대 총장 및 김영배, 안승주 교수와 함께 무령왕릉 발굴에 참여했던 박용진 님이 작성한 초고이다. 표지 및 목차 등은 분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수기로 작성한 부분에 교정부호나 붉은 펜 등을 이용하여 퇴고를 실시한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