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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244건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집행위원명단, 행사집행기간, 행사소요예산판단, 행사개요, 20회 백제문화제의 문제점 및 대책과 집행현황을 수록함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원 우편봉투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목표 및 행사종목, 행사종목별 세부시행계획, 역사문화행렬 행사계획, 경축분위기 조성 계획, 백제문화제 연혁을 수록함
기증자가 공주지역의 충-효-열 유적과 관련된 조사카드이다. 공주지역 가문의 정려와 기록물에 대해서 담겨있다.
1952년 공주영명중학교 입학확정통지서이다. 국가고사 성적표와 등록금을 납부하고 선발 자격을 충족한 수험생에게 영명중학교 제1학년 입학을 허가하는 통지서이다. 수험번호와 성명이 기재되어 있고 입학에 필요한 소정의 수속을 진행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5년 3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이름을 적고 그…
공주영명중학교 서무과에서 1953년에 발행한 영수증이다. 원래 영수증에 인쇄된 내용은 수업료였으나 수기로 신전비(薪田費)라고 기재해 놓았다. 청구한 금액 일금 육만원이며, 오만원의 숫자를 잘못 기재하여 지운 흔적이 있다.자료 하단에 영수받은 학생의 성명이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지방법원 정문 앞에 만개한 벚꽃의 풍경을 기반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공주지방법원 주변에는 벚나무가 많아 공주의 주요 벚꽃 명소 중 하나로 유명했다. 본 자료는 제2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1921년 공주를 방문했을 당시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도서대금 영수증이다. 일금 이백환으로 인쇄되었는데, 이(貳)를 삼(參)으로 수기 정정하였다. 계룡국민학교 39회 졸업생인 진무섭 님에게 단기 4288년 6월 23일에 발행하였다.
1972년 정안국민학교는 개교50주년을 맞아 개교기념식 및 고 원종국회장의 공적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정안국민학교를 위해 힘쓴 원종국 고 육성회장을 기리며 세운 공적비의 비문 내용이다. 공적비는 개교50주년을 맞아 제막식을 거행했으며, 현재 정안초등학교 교정 한켠에…
1948년 충청남도 농회에서 발행한 문서로, 당사자를 공주군농회 사곡면 지부장으로 임명하는 내용이다.
1952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상환통지서이다. 농지개혁법 제13조 및 시행령 30조에 의거하여 상환액을 조합에 납부하라는 안내가 기재되어 있다. 전표 우측에는 상환서를 받는 자의 주소 및 성명이 적혀 있고, 농지대금 상환액, 귀속농지관리계정 등 항목별로 상환해야할…
1958년 농지개혁사업특별회에서 발행한 상환고지서 및 영수증서이다. 고지서에 의하면 농지개혁법 제13조 및 시행령 35조에 의해 단기 4291년 12월말일 까지 계룡면장에게 농지대가개정 상환액을 납부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좌측의 영수증은 공란으로 남아 있다.
1963년 학생의 날에 개최할 공주문화원의 제2회 백일장 개최의 취지와 각종 규정을 알려주는 개최요강이다. 백일장은 학생의 날에 공주박물관 정원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
이문호의 조모 '이영자'의 소상 시 작성된 부의록이다. 첫 장에는 '무술 11월 15일 자기친소기' 와 '부의록'이 적혀있다. 내용을 보면 가족의 경우 관계와 이름을 상단에 적고 하단에 부의물품과 그 수량을 기재하였다. 11~14쪽은 당시에 사용된 물품내역이…
1964.01.06부터 10일간 공주문화원에서 진행된 요리강습회에 관한 안내문이다. 지난 1963년에 이은 2차 강습회로 서울에서 초빙된 하숙정 여사가 1차에 이어 강습을 지도했다. 더불어 등록금은 없었으나 매일 실습비 30원이 청구되었다.
김용철 교수가 윤여헌 교수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라는 책을 발간하며 쓴 것이다. 서신에는 자신이 공주사범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음에도 문헌정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게 된 사연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