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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공주시 교육청에서 주최한 통일 안보 웅변 대회에서 귀산국민학교 6학년 1반 노은실 학생이 수여받은 우수상장이다.
일제강점기 공주의 특산품은 버들세공품이었다. 공주를 방문해 매일신보에 기행문을 연재한 富春山人(민태원)은 공주의 명물 4가지로 쌍수산성과 김갑순, 감, 버들세공품을 꼽았다. 주로 제민천 하류와 금강가에 버들이 많았는데, 버들전답이 약 30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여러주제의 메모이다. 우선 첫번째 면에는 지명작명시 주의사항에 대해 기재해 두었다. 이에 대해 4가지를 언급하였는데, 그것은 일반인에게 숙지되어야 하고, 옛 지명을 가급적 복원해야 하며, 상징성이 있어야 하고, 가급적 우리말로 작명해야…
윤여헌 교수가 옮겨적은 청견사(淸見寺)의 종소리 본문이다. 청견사는 일본에 있는 절로서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조일 관계가 맺어지면서 통신사가 이 절에 종종 참배를 하였다고 한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종소리가 나의 생각을 좇아 몇 번 울리니 아름답고나. 산과…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이다. 납부금은 110원이며, 계룡국민학교 35회 졸업생인 진경희 님 앞으로 발행되었다. 좌측에 있는 표를 통해 4,5,6월 분의 사친회비를 각각 납부하고 그 날짜를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충청남도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위원회 회의자료로 현황과 문제제기 및 개선추진경과, 타지역 문화제와의 비교, 도의 문화제개선 구상, 관계전문가의 개선의견, 주요협력안건, 참고사항을 수록함
백제문화선양위원회위원장의 주재로 천도행사의 주요등장인물 선정, 음복의 자리식단 결정에 대해 토의한 회의록 / 참석대상자 명단 수록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7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날짜와 이름을 적고 그…
회춘당 한약방의 이광진이 윤여헌 교수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그는 자신이 연주한 음반을 동봉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한편, 그가 편지지로 사용한 것은 약방문으로, 회춘당 한약방의 연락처가 적혀 있다.
1979.03.21,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한 제42차 정기총회 속기록과 참석확인서이다. 당시 회의에서는 1978년도 사업실적보고와 동년도 세입세출 결산서에 대한 심의의결, 1979년도 사업계획의결과 세입세출 예산안 의결을 진행했다.
이철원을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으로 임명하는 교지. 이철원(1823-1903)은 전주이씨 덕천군의 17세손으 문행이 높았던 이면배(李勉培)와 만경노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87년 효력부위 용양위 부사용을 지냈으며, 같은해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에 올랐으며, 통정대부…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취리산 삼국회맹지 관련 메모이다. 삼국사기의 문무왕조를 인용하여 취리산에서 삼국이 회맹하였다는 사실을 적어두었으며, 후면에는 신라와 당나라의 갈등 요인, 그리고 웅진도독부의 설치와 전후의 참상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기재되어 있다. 한편,…
무령왕실행위에서 공주향토문화연구회 회장인 윤여헌교수님께 보낸 서신이다. 판넬전 '백제무령왕과 가카라섬~한일교류 20년의 발자취(2008.2.1., 나고야성박물관)' 개최에 따른 명의후원 부탁 내용이다. 개최요항에는 취지와…
젊은이들이 장래에 대한 꿈을 가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을 지향하는 사회 현실을 분석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른들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한다.
1964년 자료제공자의 형님이 공주 계룡면 유평리의 본가에 우편을 보낸 후 수취한 특수우편영수증이다. 이에 의하면 특수우편물의 중량은 1편이고 우편료는 10환이며, 이 영수증은 손해배상의 청구 기타제증명상에 필요하오니 잘 보관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자료…
공주대학교 기획위원 명단 외
이은석(李殷奭)이 수강하였던 공주라디오기술학원의 첫 수강료납입영수증이다. 학원비는 2,600원이다.
공주시 전직 새마을사랑 모임회 회칙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