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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갑사의 철당간과 지주의 모습이다. 제복과 양복차림의 인물로 보아 지역의 유지나 관료, 순사 등의 인물로 추정된다. 본 엽서는 조선의 명소 엽서시리즈 중 하나로 발행되었다.
일본 누마즈로터리클럽의 오오노카즈요시(大野 數芳)가 윤여헌 교수에게 보내온 연말 편지이다. 로타리 클럽 3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른 것에 대해 감사하며, 24년간 양측의 로타리클럽 교류에 많은 회원교체가 있었고,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더욱 좋아질 것을 기대한다고…
1961년 공주 계룡면 농지계에서 발행한 가영수증으로, 농지대금 상환금 일금 사천이백삼십일원을 영수하였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읽는 방식으로 글자를 썼으며, 영수 받는 자의 성명과 주소가 좌측 상단에 기재되어 있다.
1977.06.01부터 10일간 공주문화원에서 진행한 여름 요리 강습회 안내문이다. 가정에서 할 수 잇는 각종 요리의 조리법과 도시락 만드는 법 등 다양한 요리교육이 이뤄졌다.
이 메모는 2016년 9월 간행된 윤여헌 교수의 공주지역사연구 회고록 책의 서문를 자필로 작성한 초고이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이,

"이 글들은 우리 고장에 대하여 평소 필자가 발견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우리고장 공주는 백제 웅진시대의 서울이었을 뿐…
엽서 속 선화당은 본래 충남도청 청사의 본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한 후 앵산공원으로 이건되어 백제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 엽서는 1930년대 '사적의 공주' 엽서 시리즈 중 하나로 발행된 것이다.
공주군 우성면 단지리에서 출생하고 동면 동대리로 주소를 이전한 김상진의 호적등본이다. 전(前) 호주로 김상진의 아버지인 김칠봉(金七奉)이 기재되어있고, 어머니 김단연(金丹然), 처(妻) 이창분(李昌分), 자녀들 그리고 손자들까지 등록되어있다. 해당 인물들의 출생연도와…
1977년 제37회 공주군 추계 친목배구대회 진행을 알리는 초청장이다. 당시 배구대회는 제2회 김종필기 쟁탈 배구대회를 겸하여 진행되었다.
1987.02.09,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한 제55차 정기총회 회의록이다. 총회를 통해 1986년도 사업실적보고와 예산결산심의를 진행하였으며, 1987년도 사업계획과 세입세출 예산안 심의도 병행했다.
일제강점기 공주부근에서 출토된 백제자기의 모습이다.
1958년 공주고등학교 학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10,11,12월 간 납부금으로 일금 육천환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공주고등학교도수입원 명의로 영수하였으며 영수받는 학생의 학년, 반, 번호 및 성명이 우측에 기재되어 있다.
이문호의 부친 '이중용'의 초상 시 작성된 부의록과 조객록 일체이다. 첫 장에 ‘을유 9년 10일’과 ‘조객록’이라고 적혀있다. 본문을 보면 1~3쪽은 부의록,4쪽은 공란. 5~8쪽은 조객록, 9~10쪽은 부의록으로 구성되어있다. 상단에는 부의객의 이름, 그 아래에…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0년 10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1930년대 공주형무소의 간수들이 사용한 수첩으로 추정되는 자료이다.
1952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전(全)기분 답세(畓稅)영수증으로, 일금 육천사백구십육원을 영수하였다. 전표 상단에 '영수증'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전표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을 기재하는 칸이 있고, 금액과 세금 명목이 상세히 적혀있다.
전회 이사회 결과보고, 중앙회 개정규정 보고, 주요 현안업무 보고, 충청남도 새마을회 윤리위원 위촉 승인 건
1952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제2기분 가호세 영수증으로, 일금 사천일백삼십사원을 영수하였다. 전표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을 기재하는 칸이 있다. 가옥세로 일금 이천육칠원, 공부가세로 일금 이천육칠원이 각각 청구되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