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244건
국립공주박물관과 (재)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제3회 역사문화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하였음을 증명하는 증서이다. 역사문화아카데미는 지역민들에게 평생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국립공주박물관의 특별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주제의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제3회…
1958년 공주고등학교 학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10,11,12월 간 납부금으로 일금 육천환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공주고등학교도수입원 명의로 영수하였으며 영수받는 학생의 학년, 반, 번호 및 성명이 우측에 기재되어 있다.
신관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기증자에게 초등학교 교감으로 임명하고 충청남도공주교육청교육장이 지정하는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토지의 지번과 경계, 면적 따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만든 평면지도이다. 소재지는 공주군 명탄면 반곡리 화산상봉이며, 소유자는 반곡리에 거주하는 진태봉이다. 축척은 1/300이며 융희 4년(1910)에 작성되었다. /…
공주시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위원회 명부와 부서, 행사일정표 및 행사집행부서를 수록함
1. 총괄 부분별 사업실적 통계표 / 2. 문예 및 홍보사업 / 3. 도서관 운영 / 4. 시청각교육사업 / 5. 방송사업 / 6. 전시실, 생활관, 살롱, 운영사업 / 7. 원사시설 및 관리운영사업
일제강점기 앵산공원과 선교사가옥을 사진그림엽서로 제작한 것이다. 엽서의 하단에 앵산공원을 Sakurayama로 표기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윤여헌 교수가 옮겨적은 청나라 사람 막우지(莫友芝)의 대련구이다. 본문은 4자 운율로 4구씩 두 수로 총 32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내에는 원문과 해석이 모두 알려져 있지 않다. 첫번째 대련시에서는 글자 하나를 오기한 것으로 보이며, 두번째 대련시에서는 글자 둘을…
1973.06.24 진행된 제2회 공주문화원 아마추어 바둑대회의 참가신청서 양식이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쓴 메모로, 제2건국위원회에 대한 건의사항을 3가지로 나누어 기재한 것이다. 메모지로 사용된 종이는 공주시에서 제작한 메모지로, 상단부에 공주시 CI가 기록되어 있다.
윤여헌 교수가 옮겨적은 청견사(淸見寺)의 종소리 본문이다. 청견사는 일본에 있는 절로서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조일 관계가 맺어지면서 통신사가 이 절에 종종 참배를 하였다고 한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종소리가 나의 생각을 좇아 몇 번 울리니 아름답고나. 산과…
계룡국민학교 47회 졸업생 민경규 님에게 발행된 기성회비 납입고지서 및 영수증으로, 1963년도 기성회비 일금 일백원을 청구하였다. 보호자인 민병영님의 성명과 거주기 금대리도 기재되어 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사대부고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3년 10월분 월급봉투로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전용으로 제작되었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계룡국민학교에서 교과서대금으로 일금 일백환을 청구한 영수증이다. 계룡국민학교 39회 졸업생인 진무섭님에게 6학년 1학기 교과서 대금료로서 단기 4293년 3월 5일에 발행하였으며, 상세한 교과명도 기재되어 있다.
1961.11.24, 공주문화원 주관으로 다방 왕궁에서 실시될 좌담회 개최 안내문이다. 공주사범대학교 임헌도 교수가 일본의 한 대학교를 방문한 후 백제문화에 관해 강의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1969.12.29, 공주문화원 회의실에서 진행된 제23차 이사회 속기록이다. 이사회에서는 1969년도 제1차 세입세출 추경예산 심의안을 의결하는 등 각종 협의를 진행했다.
1923년 충청남도공립사범학교에서 발행한 교직원 신분증명서이다.
윤여헌 교수가 키요미즈 준(淸水 淳)에게 보내는 편지의 초안문이다. 본인이 통풍을 진단받고 힘들어 하고 있다고 전하며, 키요미즈준이 보내준 에 나오는 통풍치료 3단계에 언급된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보내줄 수 있는지 부탁하고 있다.
1930년대 '백제의 구도'시리즈 엽서 중 공주신사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