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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244건
기획위원회 회의자료 및 개최 안내장
2009.1.6.자 공주시청 공문이다. 향토문화유적보호위원회 위원 재위촉 알림에 관한 내용으로 재위촉 동의를 위한 위촉승락서 작성과 회신일자, 위원임기기간에 관한 설명 수록되어 있다. 붙임으로 공주시향토문화유적보호조례, 공주시향토문화유적보호위원회 명단, 위촉승락서가…
1954년 금융조합에서 발행한 대출금 영수증이다. 문서 상단에 날짜 아래로 표가 있는데, 계정과목(計定科目) 이하로 조합원의 인적사항이 적혀있다. 적요(摘要)란에는 가영수증(假領收證), 기한, 대부금 잔액 등을 적을 수 있는 란이 있으며, 가장 우측에는 영수금액 및…
이 문서는 을 주제로 윤여헌 교수가 집필한 글의 사본으로 어느 책의 27~28쪽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교권을 교사의 권리나 권한으로 볼 것인지, 혹은 교사의 권익이나 권위의 뜻으로 이해할 것인지에 따라 교권에 대한 논의의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기재하였다. 일부…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 중 '수륙의문촬요'에 관한 것이다.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우수한 새마을지도자 위촉, 조직의 명확한 목표 설정, 새마을지도자 교육 강화, 읍면동 월례회의를 통한 사업추진, 철저한 평가 및 재충전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로 청련암 인법당에 걸려있는 '청련암개금개와병현판기'에 관한 것이다. 본 유물을 통해 공주의 다양한 옛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1988년 정안초등학교 졸업식을 기념하여 공주 관내 인사들이 보내온 축전이다. 본 자료는 공주시 국회의원이 보낸 것이다.
연도미상의 동계(洞契)에 관한 원고이다. 조선조의 특징과 동계의 사회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 26회 백제문화제 행사를 총평, 행사별 평가를 할 수 있는 평가서 양식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2년 11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2008년 6월 8일에 가카라시마에서 진행한 무령왕탄생제기념 행사 사진을 여러장 인쇄하여 코팅하였다. 행사사진, 무령왕생탄기념비, 가카라시마 사진이 실려있다.
이 문서는 윤여헌 교수가 일본서적의 한 부분을 자필로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왼편에 'S. 숫자'를 별도로 표기하였는데, 본책의 페이지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하지 않다. 필사한 부분은 에 대한 글이다. 입법재량, 침해재량으로서의 입법재량을 주제로 전개된다.
高山樗牛의 '세이켄지의 종소리'라는 글이다. 1901(메이지 34)년에 발표되었다. 구자체, 구가나, 역사적가나표기법으로 작성된 것이 특징이다. 또한, 같은 해 8월에 발표된 6개의 시가가 같이 실려 있다. 이 '무제집'이라 이름 붙여진 시가군 또한 高山樗牛의 것인지는…
1961년 공주중학교 입학생에게 발행한 교과서 대금 영수서로, 도서비로 일금 오천구십오환을 청구 및 영수하였다. 자료 상단에는 '공중'이라는 표기가 있으며 신입생의 수험번호와 성명과 제일은행 공주지점에서 영수하는 금액이 적혀있고, 납입을 증빙하는 도장이 찍혀 있다.…
1988년 공주시교육청에서 주최한 제4회 학교간 경기대회에서 유구국민학교가 여국부 400m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여 받은 상장이다.
조선후기 충청병영의 중군영지에 해당하는 이곳은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가 있는 장소이다. 1895년 갑오개혁에 따라 전국의 산성과 군영을 폐지하면서 이곳의 군영 관련시설은 점차 없어졌다. 이후 공주 갑부 김갑순에게 불하되면서 민가와 시장이 들어서 성안마을이 형성되었다.…
1962.11.21에 진행될 공주문화원 교양강좌의 초대장이다. 당시 강좌에는 미 공보원에서 마련한 홀 브라이트와 윌리엄 드 그라스씨가 내원하여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전 공주교대 총장 및 김영배, 안승주 교수와 함께 무령왕릉 발굴에 참여했던 박용진 님이 작성한 초고이다. 표지 및 목차 등은 분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수기로 작성한 부분에 교정부호나 붉은 펜 등을 이용하여 퇴고를 실시한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