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244건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쓴 문서로 '사회과학'이라는 주제의 강의안으로 추정된다. 강의안의 첫머리에 사회과학의 정의에 대해 밝히며, 가장 넓은 뜻에서의 사회과학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의 집단과 그 문화적 소산이 있는 곳,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기증자가 공주의 충효열 유적에 대해 조사하기 전 모아둔 기초조사자료집이다. 본 자료에는 효자 김영성의 정려와 오수혁, 각종 문헌자료의 사본이 수록되어있다.
공주사범학교에서 제작한 공작교육의 발자취라는 제목의 교재 등사본이다. 밀집모자로 가방만들기, 스탠드 만들기 등 수업내용이 그림과 함께 필사되어있다. 공주사범학교는 공주여자사범학교가 1951년에 개교한 것이다. 이후 1962년에 2년제 공주교육대학으로 개편되고, 같은 해…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 중 마곡사 아미타회상도에 관한 것이다.
1965년에 발행한 계룡공립국민학교 47회 졸업생 민경규 님의 생활통지표이다. 교과학습발달상황 및 특별활동, 표준검사, 행동발달상황, 출석상황과 가정통신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영명중학교의 1951~1957년 졸업생과 영명고등학교의 1953~1957년 졸업생 명단을 기록해놓은 문서이다. 졸업장 발행번호, 졸업년월일, 졸업장성명, 생년월일, 비고란으로 표가 인쇄되어 있는데, 번호와 성명만 기입되어 있다.
1942년에 발급된 정안공립국민학교 졸업증서이다. 일제강점기에 발급된 증서로 창씨개명된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본교 수업연학 6개년 전 교과를 졸업하였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이다. 정안초등학교는 1922년 5월 23일에 정안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이후…
오태식이라는 인물이 금 25원 90전을 빌리고 반제하는 대부를 명시한 차용금증서이다. 다른 차용금증서와 달리 모두 수기로 작성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대부의 성격은 드러나지 않는다. 차주와 대부금의 이율 및 반제 기한에 관한 기초적인 정보만 수록되어 있다.
1964~1966년 공주문화원은 전국 최초로 자립된 문화원 청사 건축을 진행했다. 당시 공주읍 내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문화원 청사 신축을 위한 기금을 모금했다. 본 자료는 1966.03.08 기준 해당 할당금을 납부하지 않은 인사의 명단이다.
1968.01.07, 공주문화원 회의실에서 진행한 제4차 임시총회 속기록이다. 당시 결원이 된 이사 선출 건 등이 논의되었다.
2000년 4월 20일 충청남도테니스협회가 주최한 제21회 충청남도지사기 테니스대회에서 공주고등학교가 남자고등부 2위를 차지하여 받은 상장이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시교육청에서 장학장으로 근무하던 당시에 받은 1999년 6월분 보수지급명세서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1980년대까지…
1967년 공주군 신풍면 쌍대리에 거주하는 이용규 씨가 작성한 청첩장이다. 오는 4월 5일에 열릴 자제의 혼일을 알리며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기를 희망하는 내용을 담아 적었다.
1956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납세고지서이다. 전표에 의하면 발행연도 및 납세자의 성명, 리(里)가 적혀있고, 다음칸에 조세명인 '갑종제1종토지수득세'가 인쇄되어 있다. 이하로 납부해야할 정조(正租)을 기입하는 란이 있다. 계룡면 유평1리 진상옥 님에게 청구된…
1964년 공주군체육회에서 주최한 제1회 군내 국민학교 종합체육대회에서 유구국민학교가 남자 체조부 종목 2등의 성적을 거두어 받은 상장이다. 상장 우측 상단에는 '국민학교 유구팀'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무령왕국제네트워크협의회장으로 재직중이던 시절, 장팔현 박사가 무령왕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무령왕' 집필과 출간에 대하여 직접 작성한 격려사이다.
1976년 제36회 공주군 추계 친목배구대회를 앞두고 진행된 공주군 배구협회 이사회 회의록이다.
한국전쟁으로 폭파된 공주고등학교를 복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황도표철이다. 공주고등학교는 1951년 1월 20일 UN군의 실화로 인해 본관 및 부속건물이 전소되었고, 1958년 10월 10일에 본관복구공사에 착수하여, 1961년 5월 1일에 복공식을 진행하였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