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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1건 정홍식
정홍식의 손자 정대규가 경성에서 살 때 간이학교를 졸업하며 찍은 단체사진이다. 사진은 경성사진관에서 촬영하였다.
정홍식의 아들 정희찬이 경성 경복궁 옆에 있던 자택에서 여러 지인들과 찍은 사진이다. 2열 우측에서 두 번째 자리에 서 있으며, 안경을 썼다. 언제 누구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인지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정부원의 조부 정희찬의 장년기 시절 증명사진이다. 정희찬(鄭熙燦, 1877~1937)은 정3품 통정대부의 품계를 지녔으며, 육군보병참위 육군무관 학교교관, 육군보병연대기관을 지냈다. 묘는 공주시 우성면 안양리 독안동에 있다.
비슷한 모양으로 인쇄된 만사의 양식을 고려하여 정희찬의 만사로 추정된다. 덕수이씨 이석영(李錫永)이 지었다. 원형의 보관통에 담겨 보관되고 있다.
비슷한 모양으로 인쇄된 만사의 양식을 고려하여 정희찬의 만사로 추정된다. 덕수이씨 이규재(李奎宰)가 지었다. 원형의 보관통에 담겨 보관되고 있다.
‘정축 3월 9일’, 즉 1937년 3월 정홍식의 아들 정희찬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친한 아우 신가균(申可均)이 지은 만사(輓詞)이다. 만사의 서두에 정희찬의 호를 따서 ‘우포(愚圃) 형’이라고 부르며 시작하고 있다. 원형의 보관통에 담겨 보관되고 있다.
1941년 4월 무성서원에서 보낸 통문을 받고, 익산군의 매곡사 장의 정희석(鄭熙碩) 외 16명의 유림들이 백산서원에 3선생 위패 옆에 정홍식을 추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보낸 통문이다. 연호 위에는 매곡사의 인장이 찍혀 있다.
1941년 4월 무성서원으로부터 통문을 받고 전북 익산군의 오강서원 장의 정희석(鄭熙碩) 외 20명의 유림들이 백산서원에 3선생 위패 옆에 정홍식을 추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보낸 통문이다. 연호 위에는 오강서원의 인장이 찍혀 있다.
1941년 4월 전북 정읍 무성서원의 김환풍(金煥豊) 외 20명이 정홍식을 연재 송병선, 만포 정제호, 모은 정동식이 배향된 백산서원에 추배하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자고 각 도 군내의 향교와 서원에 보내는 통문이다. 연호 위에 무성서원의 인장이 찍혀 있다.
‘광무6년 12월 14일’, 즉 1902년 12월 14일 정홍식을 시종원 분시어 관직을 내린다는 임명장. 의정부 찬정 이자 궁내부 대신서리 및 궁내부 협력변호사를 맡고 있는 조정구(趙鼎九)가 확인하였으며, ‘궁내부인(宮內府印)’의 인장이 찍혀있다. 유리 액자의 형태로…
‘광서14년’, 즉 1888년 9월에 정사홍이 무과 병과 제26인으로 급제하고 난 후 받은 무과급제교지이다. 붉은 색 바탕의 종이에 글씨를 쓴 홍패(紅牌)의 모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