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충남도청 앞 '관아대로'라고 불렸던 욱정(旭町)거리(現 감영길)의 모습이다. 이곳은 공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손님을 비롯해 상인과 지게꾼 등 수많은 사람이 오갔던 곳 중 하나였다. 또한 도청에서부터 대로를 따라 전봇대가 세워져 있으며, 각 상점마다 문…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
일제강점기 공산성 공북루 부근에 설치된 금강 목교의 파노라마 사진그림엽서이다. 본 자료는 500007856의 복본이다.
1920년대 초반 제민천 하류에 있던 버드나무 군락지의 모습이다. 멀리 유교(柳橋)가 보이는데, 현 중동 큰 사거리와 연결된 교촌교로 추정된다.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서 바라본 1910년대 전반기 충남도청 부근 시가지이다. 공주 봉황산 아래 조선시대에 조성된 충청감영과 공주목을 잇는 관아대로는 충남도청과 공주군청을 이어주는 도로로 변화했다. 그리고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대로 주변에는 상가와 여관 등…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엽서는 계룡산의 절승 시리즈 중 하나이다. 계룡산의 맑고 깨끗한 계곡을 배경으로 지팡이를 들고 등산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 중 일부는 원판 촬영 후 후편집을 통해 채색과 함께 가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물의 복장이 말끔한 양복이나 제복차림을 한 것으로 보아…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충남도청의 정문인 포정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문루 2층의 창호지가 유리로 바뀌었으며, 문루와 연결된 담장도 기와와 돌이 조화를 이루던 전통식 담장에서 일제식 널빤지를 이용한 벽으로 바뀌었다. 이는 500007866과 비교하면 그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조선후기 충청병영의 중군영지에 해당하는 이곳은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가 있는 장소이다. 1895년 갑오개혁에 따라 전국의 산성과 군영을 폐지하면서 이곳의 군영 관련시설은 점차 없어졌다. 이후 공주 갑부 김갑순에게 불하되면서 민가와 시장이 들어서 성안마을이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