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엽서는 계룡산의 절승 시리즈 중 하나이다. 계룡산의 맑고 깨끗한 계곡을 배경으로 지팡이를 들고 등산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 중 일부는 원판 촬영 후 후편집을 통해 채색과 함께 가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물의 복장이 말끔한 양복이나 제복차림을 한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공산성 공북루와 성안마을의 모습을 사진그림엽서로 제작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충남도청 앞 욱정거리(現 감영길)에서 제민천을 가로지르는 공주교의 모습이다. 1917년 대홍수로 당시 도청 길목에 있는 욱교(旭橋)가 붕괴되었는데, 이듬해 6월 콘크리트 시멘트 재질의 다리로 바꾸며 그 이름도 공주교(公州橋)로 개칭했다. 현재 이 다리는 옛…
지금의 공산성 공산정 부근에서 동쪽을 바라본 모습으로,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와 금강이 보인다. 공북루 밖에 있던 민가는 사라지고, 전답이 개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는 백제 웅진도읍기 산성이 축조되었을 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루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은 식민지정책에 따라 사적지를 공원화 하여 '산성공원'이라 불리었다. 본 자료는 500007853과 유사한 자료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쌍수정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쌍수정의 윗편에 공산성과 쌍수정에 대한 설명이 쓰여있다. 설명에 의하면 '쌍수정은 조선개국 233(1625)년 인조가 한양의 난리(이괄의 난)를 피해 와서 난이 진압된 후, 왕이 머물던 것을 기념하기…
공산성에서 금강을 향해 북향으로 지어진 영은사는 1457년(세조 3) 묘은사(妙隱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후, 임진왜란 때 승군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1910년대 말경, 봉황산 아래 위치한 충남도청 중심의 공주 시가지 모습이다. 엽서에는 당대의 인물이 작성한 수비대와 도청, 법원, 이름난 요정 등 주요명소와 함께 '앵산공원에서 공주를 바라보며'라는 친필이 남아있다.
조선후기 충청병영의 중군영지에 해당하는 이곳은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가 있는 장소이다. 1895년 갑오개혁에 따라 전국의 산성과 군영을 폐지하면서 이곳의 군영 관련시설은 점차 없어졌다. 이후 공주 갑부 김갑순에게 불하되면서 민가와 시장이 들어서 성안마을이 형성되었다.…
일제강점기 공주 계룡산 단풍나무 숲길 모습이다. 단풍놀이를 즐기기 위해 계룡산을 찾은 지역유지와 일본인으로 추정된다. 우측의 조선인과 대비를 이루는 점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