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청의 정문인 포정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문루 2층의 창호지가 유리로 바뀌었으며, 문루와 연결된 담장도 기와와 돌이 조화를 이루던 전통식 담장에서 일제식 널빤지를 이용한 벽으로 바뀌었다. 이는 500007866과 비교하면 그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금의 공주우체국 자리에 있던 공주우편국의 모습이다. 본래 지금의 중동 큰 사거리와 작은 사거리 사이 차부 뒤편에 있었는데, 1913년 12월 반죽동으로 이전했다. 엽서 속 모습은 반죽동으로 청사를 이전한 직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사다리를 타고 전봇대에 오른 2명의…
공산성에서 금강을 향해 북향으로 지어진 영은사는 1457년(세조 3) 묘은사(妙隱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후, 임진왜란 때 승군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쌍수정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쌍수정의 윗편에 공산성과 쌍수정에 대한 설명이 쓰여있다. 설명에 의하면 '쌍수정은 조선개국 233(1625)년 인조가 한양의 난리(이괄의 난)를 피해 와서 난이 진압된 후, 왕이 머물던 것을 기념하기…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8년 공주에 주둔하며 공주사람을 보호하던 명나라 세 장수 제독 이공과 위관 임제, 유격장 남방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비문에는 명의 장군 이제독이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일제강점기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 1920년대 초까지 있었던 일제의 대신궁이다. 일제는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위해 곳곳의 사적지를 공원화하면서 그곳에 신사를 건립했다. 공주에서는 공산성을 산성공원이라 격하시키고, 미국 선교사가 세운 영명학교 인근을…
http://kutsukake.nichibun.ac.jp/CHO/detail.html?id=270045
일제강점기 공주의 특산품은 버들세공품이었다. 공주를 방문해 매일신보에 기행문을 연재한 富春山人(민태원)은 공주의 명물 4가지로 쌍수산성과 김갑순, 감, 버들세공품을 꼽았다. 주로 제민천 하류와 금강가에 버들이 많았는데, 버들전답이 약 30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1910년대 말경, 봉황산 아래 위치한 충남도청 중심의 공주 시가지 모습이다. 엽서에는 당대의 인물이 작성한 수비대와 도청, 법원, 이름난 요정 등 주요명소와 함께 '앵산공원에서 공주를 바라보며'라는 친필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
일제강점기 범람한 제민천 하류에서 바라본 공주시가지 모습이다. 범람지 위쪽으로 공주 갑부 김갑순이 건립한 사설시장과 봉황산 아래 공주지방법원을 비록하여 시가지의 모습이 잘 보인다. 무엇보다 금강이 범람하여 강물이 산성정의 시장 근처까지 차올라 배가 드나드는 모습을 볼…
1912년 앵산공원 부지에 있는 미국인 선교사가옥과 그들이 건립한 현재의 영명학교 부지의 모습이다. 충남도청 앞 관아대로만 지붕이 다른 일제식 건물이 들어서 있을 뿐, 공주시가지는 그 구획이 아직 정비되지 않은 모습이다. 또한 제민천 하류도 본래의 자연적인 저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