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의 쌍수정은 조선 16대 국왕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난 햇을 때, 나무에 기대어 난의 평정소식을 들었다는 유지를 기념하기 위해 1734년(영조 10) 충청도관찰사 이수항이 건립한 누정이다. 엽서 속 모습은 오늘날과 다르게 쌍수정 아래 사적비각 쪽에서…
일제강점기 금정(錦町)에 있는 일본 주류 판매점의 모습이다. 간판에는 '삿포로, 아사히'맥주를 취급한다는 팻말도 부착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금정은 1914년 군면통폐합에 따라 만들어진 욱정과 본정, 산성정, 대화정, 상반정과 함께 6개 정(町) 중의 하나로 지금의…
1923년 3월 충남도청 북측으로 설치된 충청남도 평의장이다. 도평의회 또는 도회로 불리던 위 기관은 조선총독부에서 외형상 지방자치를 위해 전국 13도에 설치한 자치의회였다. 충남도평의회는 1920년 10월 처음으로 출범했고, 광복 이후 폐지되었다.
1910년대 후반경 공산성 공북루 앞 산성나루 부근에서 바라본 금강의 모습이다. 한 사내가 낚시하는 모습과 강 중간에 떠있는 나룻배, 멀리 목교와 함께 연미산도 보인다.
쌍수정은 1911년 공주를 방문한 독일인 신부 베버가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공산성에서 유명한 장소이다. 그는 "우묵땅에는 울타리를 두른 비각이 있었고, 그 안에는 큰 거북 등에 비석이 서 있었다"라는 기록을 통해 쌍수정 사적비도 언급했다. 본 자료에서는 쌍수정 누각에…
선교사 가옥 부근에서 내려다 본 북쪽 공주 시가지의 모습이다. 공주지방법원과 앵산공원을 중심으로 하얀 벚꽃이 피었으며, 특히 공산성으로 가는 옛 길을 따라 벚꽃터널이 조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자료는 현 공주역사영상관의 전신으로 1923년 건립된…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제민천 하류의 버드나무 군락이 있는 곳의 풍경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제민천 중간에 서있는 3명의 인물과 제민천 제방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멀리 유교(柳橋)가 보이는데, 현 중동 큰 사거리와 연결된 교촌교로 추정된다.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8년 공주에 주둔하며 공주사람을 보호하던 명나라 세 장수 제독 이공과 위관 임제, 유격장 남방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비문에는 명의 장군 이제독이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현재의 쌍수정 부근 성벽 위에서 제민천과 금강이 합수되는 금성동 일원을 바라본 사진그림엽서이다. 엽서 좌측으로 정지산과 그 뒤 연미산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곳은 본래 금강물이 드나들던 저습지였는데, 제방이 축조되면서 개간이 이뤄졌다. 그 뒤 몇 채 되지 않지만 민가가…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는 백제 웅진도읍기 산성이 축조되었을 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루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은 식민지정책에 따라 사적지를 공원화 하여 '산성공원'이라 불리었다. 본 자료는 500007853과 유사한 자료로 보인다.
지금의 공산성 공산정 부근에서 동쪽을 바라본 모습으로,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와 금강이 보인다. 공북루 밖에 있던 민가는 사라지고, 전답이 개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