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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7일 일본 시즈오카현 누마즈시에서 열린 누마즈북로타리클럽 35주년 기념사업으로 윤여헌 교수가 집필한 라는 제목의 글이다. 당시 윤여헌 교수는 공주대학교 명예교수이자, 공주로타리클럽 국제봉사위원장으로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글의…
2008년 제1회 충남향토사대회 계획서이다. 일시 2008.11.18., 장소 공주대학교 백제교육문화관이다. 문서의 내용으로는 대회일정과 관련해 1)개최일시 2)장소 3)발표및진행계획 4)준비계획 5)비용(820)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9년 4월 22일에 진행한 제1차 백제문화선양위원회 회의 안내 문서다. 일시, 장소, 주요안건, 진행계획, 참석자 현황이 적혀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천일창(天日槍 또는 천일지모) 관련한 기록이다. 천일창은 신라 왕자로 수인 천황조에 도래하여 병기현의 출석에 머물렀다는 사람인데, 이에 대한 내용과 그 행적이 개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1971년 제2기 주민등록반의 교육과정을 수료했음을 증빙하는 수료증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갑사의 철당간과 지주의 모습이다. 제복과 양복차림의 인물로 보아 지역의 유지나 관료, 순사 등의 인물로 추정된다. 본 엽서는 조선의 명소 엽서시리즈 중 하나로 발행되었다.
1973년에 발급된 정안국민학교 졸업장이다. 정안초등학교는 1922년 5월 23일에 정안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이후 정안공립심상소학교와 정안국민학교를 거쳐 정안초등학교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37년에 학생 수가 증가하여 문천간이학교가 개교하였는데, 1944년에…
1983학년도 제5회 화봉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배포한 학사보고 안내서이다.
1977.03.16,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한 제39차 이사회 및 총회 속기록이다. 당시 회의를 통해 신임 이사장 취임 보고를 진행하였고, 1976년도 세입세출에 관한 집행 내역을 토의했다. 나아가 1977년도 사업계획 보고도 진행했다.
백제문화와 일본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윤여헌 교수가 1994년 9월 9일 야마구치현 교육회관에서 강연한 글이 제1쪽부터 제9쪽까지 있고, 마지막 쪽은 이 강연을 소개한 일본 서경신문의 글이다. '윤여헌 씨(한국 공주사범대학 명예교수) 강연에 감동하다'라고 가운데 크게…
이 문서는 1992년 2월 3일 `97 文化유산의 해-알고 찾고 가꾸자' 라는 칼럼을 위해 '공주지방의 문화유적을 다시본다'라는 주제로 쓴 초고검토본으로 추정된다. 윤여헌 교수가 직접 쓴 친필 복사본 위에 다시 친필메모가 쓰여져 있다. 글의 주요 내용으로는 1.남아있는…
1. 원사 전경 / 2. 원사 평면도 / 3. 본원 사업지표 및 운영방침 / 4. 본원 기구 및 사업체계 / 5. 본원연혁 / 6. 본원 시설상황 / 1968년도 사업계획
계룡국민학교 제61회 졸업생 오현숙님의 졸업장이다. 본교 6개년 과정을 졸업하여 수여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서기1983년 2월 15일자로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하였다.
1960년 남궁화의 나이 39세가 되던 해에 공주 일대에서 작성한 일지이다. 첫장을 넘기면 신문스크랩내용과 음력절후표, 연령대조표와 월간동정표가 있다. 그 뒤로 하루일과를 기록하였으며, 부록으로 1일1언, 지인과 주고받은 술값이나 설탕량 등을 별도로 기록하였다. 또…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 있던 대신궁은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 주변부의 영명학교 확장과 앵산공원 공원화의 진전으로 충남도청(現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의 뒤편 봉황산 기슭으로 이전했다. 앵산공원에 있던 작고 남루한 모습은 사라지고 입구부터 대신궁을 알리는…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5년 3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이름을 적고 그…
충남발전연구원에서 2001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한 충남고도 옛모습 되살리기 사업계획서다. 추진배경 및 목적, 과업 개요, 당초 계획과 변경된 계획사업, 변경 사유가 적혀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