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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03.13, 공주문화원에서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의 공보관을 초빙하여 '자유중국의 오늘'이란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했다. 본 자료는 해당 강연회 초청장이다.
1910년대 어느 여름 날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서 공주시가지를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봉황산 아래 충남도청에서 동서방향으로 난 욱정거리(現 감영길)와 남북으로 흐르는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충남행정의 수부(首府)답게 충남도청과 공주지방재판소(現 공주지방법원),…
2015년 3월 3일 예정된 안내문이다. 회의개요, 세부일정이 있고, 붙임자료로 국립공주박물관 운영자문위원회 위원 현황, 오찬장소 등이 기재되어 있다. 당시 운영자문위원으로는 윤여헌 교수를 비롯해 위원장인 이화영 공주대학교 교수, 김종만, 윤용혁, 박영복, 나태주,…
1963~1968년 공주문화원에 방문한 이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적어놓은 방명록이다. 당대의 유명 정치인 중 하나인 신동욱과 미문화원 관계자 등 유명인의 방명록도 확인할 수 있다.
1958년 공주고등학교 입학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일금 삼만오천삼백환이 청구 및 영수되어 있다. 내역은 입학금 1천환, 수업료 6개월분 1천8백환, 학도호국단입단비 일금 3백환, 학도호국단비 1개년분 3천6백환, 사친회 입회비 1만환, 사친회비 3개월분 3천6백환,…
윤여헌 교수가 옮겨적은 한시 금강승의 본문이다. 실제로 알려진 본문의 글자와 다소한 차이가 있으나 대략적으로는 내용이 일치한다. 한편, 메모지로 사용한 종이는 공주대학교 재학시절 사용하였던 시험 답안지이다.
1984년 공주군에서 주최한 군내 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공주금학국민학교 학생들이 리코더 합주부문 은상을 기록하여 받은 상장이다.
‘광무6년 12월 14일’, 즉 1902년 12월 14일 정홍식을 시종원 분시어 관직을 내린다는 임명장. 의정부 찬정 이자 궁내부 대신서리 및 궁내부 협력변호사를 맡고 있는 조정구(趙鼎九)가 확인하였으며, ‘궁내부인(宮內府印)’의 인장이 찍혀있다. 유리 액자의 형태로…
1956년 UN국제연합한국협회충청남도 공주군지부에서 발행한 회비납입통지서와 영수증사본, 영수증이다. 통지서에 따르면 1955년분 보통회원비 일금 일백원을 12월 30일까지 공주군지부에 납입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영수증 및 통지서 표의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1962년 반포국민학교에서 제3학년 남신현 학생에게 수여한 상장으로, 교내 일제학습평가에서 1등하여 표창한다는 내용이다.
기증자가 금학국민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할 당시 체육지도실적을 미롯한 교육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함을 표창하는 상장이다.
공주의료원의 부정부패를 탄원하며 특별감사를 신청하는 공주시민 성명서이다. 이 성명서는 공주 농민회, 전교조공지회, 한겨레독자모임, 문화공간우리사랑, 충남지역 의료보험노동조합, 공주대 총학생회, 공주교대 총학생회, 공주전문대 총학생회가 공동주관하였다.
공주 배다리(구 금강교)유적 조사 - 1910년 공주시가도
역사문화기행 자료집으로 일정 및 코스가 적혀있다. 효포, 혈흔천, 영규대사, 임헌회 신도비, 화산영당, 경천역, 양화산성, 신원사, 공산성을 포함하고 있다. 문서에는 윤여헌이 직접 그린 공산성 및 그 부근 지도가 첨부되어 있고, 원고에는 메모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공주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석사 성적표이다. 학번과 인적사항, 소속학과, 지도교수, 이수과정, 전공, 입학사항 등이 상단에 표로 기재되어 있다. 1989년도 1학기부터 1991학년도 1학기까지의 성적이 기록되어 있고 1998년 7월 1일에 발급되어 이를 증명함을…
무령왕국제네트워크협의회장으로 재직중이던 시절, 장팔현 박사가 무령왕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무령왕' 집필과 출간에 대하여 직접 작성한 격려사이다.
원고지 : 충남 오페라단(단장 백기현교수) 주최 아리아와 2중창 연주회 개최
대정 12년(1923년), 공주면에서 발행한 가옥세 납세고지서와 영수증이다. 공주면 본정에 거주하는 이동우(李東宇)씨에게 발행된 문서로, 오늘날 없어진 가옥세는 가옥의 소유자에게 부과하던 지방세로 매년 5월과 11월에 납부하도록 고지서를 발행했다가 1961년 12월,…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제2건국위원회 전체회의 인사말 메모이다. 총선이 실시됨에 따라 제2건국위원회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여 그동안 진행되지 못했던 총회를 금회에 치르게 된 것에 대한 내용을 시작으로 인사말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