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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244건
서해길이 윤여헌 교수에게 모임 참석을 요청하는 쪽지형 서신이다. 대전 유성 관광호텔 커피숍에서 열리는 최종 모임에 꼭 참석하여 공주시청 하달 사항을 연구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시일은 4월 17일로 해당 연도는 기재되지 않아 알 수 없다.
1991년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실시한 제9회 어린이 문화재미술실기대회에서 귀산국민학교 4학년 오연덕 학생이 입선하여 상을 받은 내용이다.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 중 백련암 법당에 소장된 독성도에 관한 카드이다. 본 자료는 1913년 03월 26일 금호당 약효가 제작하여 마곡사 백련암에 독성탱화를 봉안하였다.
1964~1966년 공주문화원은 전국 최초로 자립된 문화원 청사를 신축했다. 본 자료는 정확한 연도를 파악할 수 없으나 서울지역에서도 회사금을 모금한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충청남도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안내문, 상세 식순가 함께 행사별안내와 대회임원, 집행부서를 소개하고 공주와 부여의 고적 및 행사안내도를 수록함
공주시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의 위원회 명부와 부서, 행사일정표 및 행사집행부서를 수록함
기증자가 1985년 공주사범대학부속중학교에 근무하면서 작성한 교무수첩이다. 담당 수업을 들어가는 반 학급 학생의 성적과 수행평가 점수 등이 적혀있고, 교무회의 중 나온 중요 내용을 필기한 부분도 눈에 띈다. 또한 본 자료의 내용으로 보아 당시에는 사대부중과 사대부고…
정안공립심상소학교부설 문천간이학교 2학년을 재학한 기증자 친형의 상장이다. 품행이 선량하고 학업이 우수하여 수여한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도서대금 영수증이다. 일금 이백원정으로 인쇄되었는데, 이(貳)를 삼(參)으로 수기정정하였다. 계룡국민학교 39회 졸업생인 진무섭님에게 단기 4288년 6월 23일에 발행하였다.
윤여헌 교수가 모치즈키 요시오(望月 良夫)에게 보내는 편지의 초안문이다. 그는 작년 3월 정년 퇴직을 하고 명예교수로서 2일간 출강을 하고, 향토문화연구회의 회장으로서 공주의 사적보존운동에 힘쓰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본 회에서 1년에 한번씩 간행하는 회지…
1961년 공주중학교 제1학년 입학자 전형시험에 합격했음을 증명하는 입학시험합격증이다. 합격증은 공주중학교장의 명의로 발행되었으며, 문서 상단에 출신국교 및 수험번호, 생년월일, 성명 등이 기재되어 있다.
1972년 가을에 개최될 예정이던 공주 관내 친목배구대회는 우천 등의 영향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후 1973.05.13 공주고등학교에서 제33회 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여 본 자료에서 개최에 관한 각종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아울러 본 자료에는 배구대회 개최와…
공주교육청에서 발행하고 유구국민학교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학지도록이다. 맨 앞 페이지에는 유구국교만의 특색과 재학생 및 학급수가 기재되어 있다. 당시 공주군의 특색사업이 학교에 적용하여 추진되고 있는 상황도 기재되어 있으며, 유구읍에서 시행 중인 내용이 수기로…
1989.08.25자 중도일보에는 삼흥여객에서 불법과 변칙 운영으로 시민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며, 오염물질 배출로 인해 금강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고발 기사에 관해 회사측에서 공주시에 발송한 해명 각서이다.
일제강점기 공주 상반정(現 봉황동 일원) 부근에 위치한 상반여관이다. 당시 공주의 대표적인 여관으로 시찰단 등 주요인사가 머물기도 했다. 엽서 중간에 상반여관 입구의 모습과 측면을 후편집하여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전 공주교대 총장 및 김영배, 안승주 교수와 함께 무령왕릉 발굴에 참여했던 박용진 님이 작성한 초고이다. 표지 및 목차 등은 분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수기로 작성한 부분에 교정부호나 붉은 펜 등을 이용하여 퇴고를 실시한 흔적이 남아 있다.
1964~1966년 공주문화원은 전국 최초로 자립된 문화원 청사 건축을 진행했다. 본 자료는 1966.03.08 기준 공사 및 자재구입에 대한 지불-미지불 명세서이다.
1952년 공주군 계룡면 유평리 이장이 발행한 영수증으로, 일금 삼천원을 영수하였다. 비목은 나맥(裸麥) 수득세이며, 우측에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과 납부비목을 기재하는 란이 있다.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