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244건
치쿠시고성문화연구회에서 공주대 역사교육과 윤용혁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의 사본이다. 가카라시마에서 열린 무령왕추모제에 참석해 주어 감사하고 앞으로 공주향토문화연구회와의 교류가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윤여헌 연구회 회장에게도 건강과 안부를…
1985.03.05, 공주문화원 제51차 정기총회에서 보고된 1984년도 문화원 예산 감사보고이다. 본 자료에 따르면 별다른 비위없이 84년도 예산안이 소중히 사용되었다는 감사보고이다.
1989년 공주시 교육청에서 주최한 통일 안보 웅변 대회에서 귀산국민학교 6학년 1반 노은실 학생이 수여받은 우수상장이다.
박정자 지명유래에 관한 향토문화유적보호위원회 회의 안내 공문이다. 안건, 일시, 장소, 참석자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다. 뒷장에는 박정자 지명유래 진정내용 개요가 첨부되어있다.
1989.02.28,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한 제58차 정기총회 회의록이다. 당시 회의를 통해 1988년도 세입세출 결산안 심의와 사업실적보고, 감사결과 보고 등이 진행되었다. 더불어 1989년도 사업계획서 및 예산안에 대한 심의도 병행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창회에서 만든 2001년 책상달력이다. 로터리클럽 활동이나 강의, 향토회모임, 약속 이나 여행 일정 등이 메모되어 있다. 유난히 회식, 모임이 많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쌍수정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인부의 모습을 사진그림엽서로 제작한 것이다. 본 자료는 수원광교박물관 측에서 제공하는 500007462와 동일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미담가화 시상식, 무연분묘 벌초해주기, 금산인삼엑스포 자원봉사, 깨끗한 승강장 만들기, 9월 주요사업 추진계획
명함(7)
이문호가 자서전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제작한 기초자료인 자서약기로 본인의 일대기를 정리하였다. 같은 크기의 종이 여러장을 연이어 붙인 것으로 앞, 뒤에 내용을 기재하였다. 앞면은 연표를 그려 상단에는 자신의 일대기를, 하단에는 국내외 상황을 기록하였다. 기간은…
1928년 공주 산성정의 잠업전습소에서 남자부 제1면생의 주소와 성명을 기재한 일람표이다.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에 사는 진공식 등 16명의 주소와 성명이 기재되어있다. /…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여자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8년 7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날짜와…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에 대한 세부행사추진계획을 수록함
1962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농지세 영수증으로, 일금 오백오십원을 청구하였다. 전표 상측에는 발행연번, 납부연도 및 비목, 리(里), 납세자명을 기재하는 칸이 있다. 자료 하단은 알리는 말씀이 적혀 있는데, 기한 내 납부를 독려하는 안내사항과 책정금액에…
1983년 문교부 장관 명의로 발행된 교원자격증이다. 관련교육법의 자격기준에 의하여 중등학교 1급 정교사의 자격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 증서를 수여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충청남도 교육위원회 교육감이 분교부 장관의 권한을 위임받아 직인을 찍었으며 검정종별,…
1980년 충청남도 교육위원회에서 발행한 교사 표창장으로, 우성중학교에 근무하는 오재봉 씨에게 수여하였다. 제2회 학생과학 발명품 전시회에서 은상을 수여받은 '편리한 책꽂이' 작품을 우수작품으로 입상하게끔 지도하여 공로를 치하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1972년 제33회 공주 관내 친목배구대회의 무기한 연기를 알리는 공문이다. 당초 1972.09.17 개최될 예정이던 배구대회는 우천으로 중단되어 동년 10.24 속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관내의 다양한 사정으로 인해 배구대회 개최를 무기한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공산성에서 금강을 향해 북향으로 지어진 영은사는 1457년(세조 3) 묘은사(妙隱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후, 임진왜란 때 승군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