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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학년도 정안초등학교 내 제반사항을 알려주는 학교요람 안내서이다.
일본 누마즈북로타리클럽과 공주로타리클럽 상호 간의 우호 친선에 공헌을 한 오오노 카즈요시(大野數芳)에게 보낸 감사표다.
1960년대 말~70년대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곡사 관광기념 엽서 시리즈 중 마곡사 내 천개의 부처상을 바탕으로 제작한 자료이다.
1929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에 수록된 마곡사 전경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엽서이다. 1911년 일제는 조선의 사찰을 정리 및 통제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하고 전국의 31개 사찰을 본산으로 지정했다. 그 중 마곡사는 충청남도를 대표하는 본산 사찰로 지정되어…
강의계획서 : 현대소설연구(1991년 2학기)
1957년 공주영명고등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영수증으로 일금 1,500환을 납입한 것을 증빙하고 있다. 졸업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졸업비목으로 학교에서 해당 금액을 영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청구서를 받는 학생의 학년과 반, 성명은 금액 상단에…
1964~1966년 공주문화원은 전국 최초로 자립된 문화원 청사를 신축했는데, 해당 과정에서 공사비 지출과 관련된 계획서이다. 본 자료에 따르면 당시 공사비는 2차례로 나누어 지급했으며 총액은 3,483,380원이다.
계룡국민학교에서 단기 4286년 9월 28일에 발행한 운동회비 영수증이다. 납부금은 사십원이며, 계룡국민학교 35회 졸업생인 진경희 님 앞으로 발행되었다.
백제문화선양위원회위원장의 주재로 행사개최일정, 행사종목 선정, 예산 확보, 일본자매도시 초청여부에 대해 토의한 회의록 / 백제문화선양위원회 참석자 명단 수록
현재 영명중고등학교 부근 유관순 열사 동상이 위치한 곳에는 전통적인 누정과 일제가 건립한 초혼사(招魂祀)가 보인다. 그 중 누정은 조선전기에 공주목사 홍석(洪錫)이 관아 부근에 있던 관정정(觀政亭)을 객사 동쪽으로 이건하며 세운 취원루(聚遠樓)로 추정된다. 누정 뒤로…
1910년 설립된 관립공주자혜의원은 현 공주의료원의 전신이다. 당시 각 도마다 주요도시에 건립한 국립병원으로, 공주자혜의원은 설립된 지 한 달 만에 환자수가 수천 명에 육박하여 공주군청의 건물 일부를 활용하기도 했다. 엽서 속 모습은 1912년 북쪽에 폐가옥을 인수해…
1991년 충청남도 공주교육청에서 주최한 '시.군내 국민학교 학생 미술실기 대회'에서 귀산국민학교 6학년 1반 노주섭 학생이 서예부문에서 은상을 받은 내용의 상장이다.
누마즈북로타리클럽의 아이카 토시오가 공주로타리클럽 회원들에게 일본 누마즈 북로타리클럽 창립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은 문서이다.
1910년대 말,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서 공주시가지를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봉황산 아래 충남도청에서 동서방향으로 난 욱정거리(現 감영길)와 남북으로 흐르는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충남행정의 수부(首府)답게 충남도청과 공주지방재판소(現 공주지방법원),…
1972년 정안국민학교는 개교50주년을 맞아 개교기념식 및 고 원종국회장의 공적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행사에서 학부형 대표가 낭독한 제막식사의 내용으로, 정안국민학교를 위해 몸과 마음을아끼지 않았던 원종국 회장의 업적과 고귀한 뜻을 기리는 내용이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5년 9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이름을 적고 그…
1970년대 공주군 일대에서 진행된 새마을 운동 중 밤나무 단지 조성사업이 한창인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한 엽서이다.
1951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제1기분 가호세 영수증으로, 일금 사천구백원을 영수하였다. 전표 상단에 '영수증'과 함께 호(戶)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전표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을 기재하는 칸이 있다.
1954년 영명고등학교 재학 1학년이던 기증자가 06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작성한 개인일기장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