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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 12년(1923년), 공주면에서 발행한 가옥세 납세고지서와 영수증이다. 공주면 본정에 거주하는 이동우(李東宇)씨에게 발행된 문서로, 오늘날 없어진 가옥세는 가옥의 소유자에게 부과하던 지방세로 매년 5월과 11월에 납부하도록 고지서를 발행했다가 1961년 12월,…
일제강점기 계룡산 연천봉 자락에 위치한 연천사(蓮天寺)로 지금의 등운암이다. 조선시대에는 정씨(鄭氏)의 왕기(王氣)를 누른다는 뜻의 압정사(壓鄭寺)라 불렸다. 이 사진그림엽서는 계룡산의 절승 시리즈 엽서 중 하나인데, 엽서 속 인물은 본 사진을 촬영 후 후편집을 통해…
일본에서 윤여헌 교수에게 보낸 편지로, 누가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황반변성을 앓고 있는 윤여헌 교수의 안부를 묻고 있다.
계룡국민학교 제50회 졸업생 김순준님의 상장이다. 1972년 2월 18일에 발행되었으며,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이를 표창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효자 향덕을 상덕으로 읽어야 한다고 설명해 놓은 문서다. 윤여헌은 2014년 6월 공주문화 306호(2014. 7~8월호) 관련 내용을 등재해 놓았다는 메모도 함께 기재해 두었다.
1987년 4월 서해만이 공주군 지방행정주사로 재직 시 제9기 회계직무 과정을 이수하고 감사원장으로부터 받은 수료증이다.
일자 1997.6.26., 장소 새이학가든이다. '문화가 살아있는 公州' 소책자 발간 기념회이다.
1996년 5월에 있었던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안내장이다. 행선지는 6.25 인민군 충남사령부 주둔지(논산 가야곡면)이며, 답사일은 1996년 5월 2일이다. 안내장에는 일시, 행선지, 출발, 회식안내사항이 있다. 또 공지사항으로 1.'웅진문화' 9집 원고모집, 5.2.…
1993년 4월 11일 한겨레신문 '공주의료원'관련 신문 캡쳐이다.


['병원 파행운영'원장 퇴진운동]-공주의료원 노조 '정실인사등 말썽'청와대 탄원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이다. 일금 육십원정을 사친회비 5월분으로 청구하였다. 단기 4286년 5월 25일이라고 발행날짜가 기재되어 있다. 발행한 담임선생님과 납부해야할 아동의 성명이 가장 하단에 적혀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공주 관련한 역사 문화 콘텐츠 기록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나타난 공주로 수원사지, 향득, 대덕사, 제나회맹을 기재하고, 인조 파천이 남긴 것, 공주진우영, 봉황산, 계룡산, 용산구곡과 갑사구곡, 동학난 전적지, 김옥균 생가와 같은…
무령왕과 백제(문화)'라는 제명의 교재용 자료이다. 무령왕의 출생에 대한 3가지 설, 무령왕의 신체, 일본과의 교류, 부장품을 중심으로 한 무령왕과 백제문화를 내용으로 하는 자료가 제1쪽부터 제5쪽까지 있다. 제명의 '문화'라는 글자는 수정테이프로 지워져 있다.
1966.07.08, 공주문화원에서 공주 관내 주부들에게 문화생활 공간을 제공하고자 영화감상시간을 진행했다. 본 자료는 해당 영화감상에 초청하는 문서로 당시 전쟁과 여교사라는 극 영화가 상영되었다.
윤여헌 교수가 갑오년(1894년)의 동학군 토벌 당시의 상황을 담고 있는 문헌 '공산초비기'에 대하여 자필로 요약한 메모이다. 메모에는 1. 이인전투, 2. 효포전투, 3. 우금치전투로 구분지어 기재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우금치전투는 별록(別錄)한다고 하며 기재하지…
1931년도 반포공립보통학교 제6학년 임월수 학생의 통신부이다. 통신부는 일제강점기 성적통지표를 일컫는 말로, 성적표, 근태표, 신체검사, 통신문 등이 적혀 있고, 축일과 제일, 주의사항 등이 인쇄되어 있다.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보통학교 수료연한 6개년 중 제5학년의…
화마루공소 구술조사 사례자인 최인철의 2005년 화마루공소 회장 임명장이다. 최인철은 모태 가톨릭 신앙인으로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화마루공소 회장을 5회 역임하였다.
1937년 정안공립보통학교에서 제1학년 이영복 학생에게 1년 중 1일도 결석하지 않은 과업을 달성하여 상장을 수여한다는 내용이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옮겨적은 광서 원년(1875년) 3월 예조입안문의 번역문이다. 이 내용에 따르면 연풍현감 이용필의 후사를 마련하기 위하여 같은 성씨의 육촌 형제인 이용주의 셋째 아들 이대중을 후사로 삼고자 장계를 올렸고, 이에 조정에서 허락되어 예조에서 입안을…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