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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244건
이문호의 조모 '이영자'의 대상 시 작성된 부의록이다. 첫장에는 '기해 11월 15일 선모친대상'과 '부의록'이 적혀있다. 내용을 보면 상단에 부의객의 이름, 하단에 부의물품과 수량이 적혀있다. 총 72명이 기록되어있다. 15쪽부터는 당시에 사용한 물품들이…
1960년 금융조합에서 발행한 대출금 영수증이다. 문서 상단에 단기로 날짜가 표기되어 있고, 그 이하 전표에는 계정과목(計定科目)과 조합원의 인적사항이 적혀있다. 적요(摘要)란에는 가영수증(假領收證), 기한, 대부금 잔액 등을 적을 수 있는 란이 있으며, 가장 우측에는…
1. 기본운영계획개요-본원 운영기구 및 사업체계도표, 본원 이사 명단, 본원 직원 명단, 본원 사업지표 및 운영방침, 본원 연혁, 본원 시설 현황, 탑의 노래(원가), 원사 전경도, 원사 평면도 / 2. 사업계획개요-본원 설립의 목적과 의의, 금년도 중점사업목표 및…
이인국민학교에서 발급한 졸업장이다. '국민학교 6개년 전과정을 마쳤기에 졸업장을 수여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고, 해당 학생의 이름과 생년월일, 졸업장 발급 날짜, 당시 이인보통학교 교장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이인초등학교는 1913년 5월 1일 이인사립삼흥학교로…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공주지도와 천황봉 지명에 대한 자필 메모이다. 메모에 기재한 지도는 5만분의 1 축척에 해당하는 공주지도로, 대정 3년(1914년) 측량되었고, 소화 3년(1928년) 제2회 수정측량을 거친 지도였다. 그 아래 천황봉, 쌀개봉, 연천봉 등의…
1962.10.09, 공주문화원에서 주최하여 공산성 내 4.19학생혁명기념탑에서 거행된 제516돌 한글날 기념식 초청장이다. 오늘날 3.1 중앙공원에 위치한 4.19학생혁명기념탑은 1980년에 이전된 것으로, 그 이전에는 공산성 내 오늘날 임류각지 부근에 위치해있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5년 3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이름을 적고 그…
일제강점기 공산성 내에 있는 망일사적비를 담은 사진엽서이다. 망일사적비는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8년 명나라의 세 장수 제독 이공, 위관 임ㅈ, 유격장 남방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지금의 명국삼장비 중 하나이다. 명의 장군 이제독이 일본인 장수…
2000학년도 우수학생 유치 홍보 추진계획(안)
1970.12.03, 공주문화원에서 이만기 선생을 초빙하여 국민생활의 성장과 지역사회 개발에 관한 주제로 시국강연회를 개최하면서 발행한 초청장이다.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교과서대금 영수증이다. 단기 4286년 4월 13일에 발행되었으며, 교과서 대금으로 일금 2,400원을 청구하였다. 담임선생님의 성명대신 도장이 찍혀있으며, 35회 졸업생인 진경희님에게 발행되었으나, 성명을 오기하여 수정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08.9.29. 공주향토문화연구회 회의자료이다. 충남향토사대회, 백제문화제 관련(첫째 주말):치쿠시고대사연구회와 교류회,아메미야 기증 유물 특별전 개관식,가라츠 무령왕실행위원회 교류회,무령왕실행위원회 동백 식재,웅진성 퍼레이드,이카와 공연. 백제문화제 관련(둘째…
지금의 금강교 아래 공산성 서쪽 암벽가에 있던 금강나루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서 1915년 이후 목교와 주교가 연이어 가설되는데, 엽서 속 모습은 목교 설치 이전에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시기로 보여진다. 멀리 금강 건너 신관동과 시목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83년 3월 이후 우성초에 재학 중인 전학년의 포상에 대한 목록이 담긴 문서이다.
1991년 7월 27일 부산일보사와 대한야구협회가 공동주최하고 부산직할시 야구협회가 주관한 제43회 화랑대기 전국 고교 야구대회에서 공주고등학교가 준우승을 차지하여 받은 상장이다.
1968.01.07, 공주문화원 회의실에서 진행한 제17차 이사회 회의 속기록이다. 당시 이사장 선출 건이 주요 의제였으며, 이사 1인당 납부하는 회비를 월 1,000원씩 인상하는 안건도 논의 후 통과시켰다.
2000년 10월 5일 제2의 건국 제2기 추진위원위촉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치사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