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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244건
공주향토문화연구회의 전신인 웅진문화동호회가 대우재단에 보낸 독회지원신청서와 승인공문이다. 웅진문화동호회에서 1988년 8월부터 1989월 2월까지 「공주 부전동 동계문서」를 독해하여 책을 출판하고자 대우재단에 지원신청을 하였다. 이에, 대우재단에서는 이 신청을 받아들여…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 중 마곡사 삼세불도-약사회상에 관한 조사카드이다.
편지 및 편지봉투 : 사곡중학교 조남룡 선생이 조동길 교수님께
1942년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발행한 생명보험료 영수장으로, 생명보험가입에 따라 납부한 보험료를 영수하고 있다. 보험자와 계약자, 납부방법 등 적는 인적사항란, 병합불입, 주의사항란 등을 기재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공주향토문화연구회의 1997년 5월 답사 및 월례회 알림문이다. 1장에 일자는 1997.5.22., 출발장소는 공주대학교 박물관, 답사장소: 무릉리, 일락산 마애불로 되어있다. 2장은 설문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1.공주향토문화연구 성격에 관한 생각, 연구회 사업…
1962년 한글날을 기념하여 진행할 백일장 개최를 알리는 공문과 참가를 독려하는 공문이다. 당시 한글날 기념 백일장은 공주문화원 개원 5주년을 기념하여 진행했다.
1979년 공주고등학교에서 발행한 상장으로, 3년간 개근한 학생에게 수여한 상장이다. 상장에는 수상자의 성명과 학년, 생년월일 등이 적혀있다.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이다. 일금 육십환정을 사친회비 7월분으로 청구하였다. 단기 4286년 7월 24일에 발행하였으며, 발행한 담임선생님과 아동의 성명이 가장 하단에 적혀있다. 계룡국민학교 33회 졸업생인 진우섭님에게로 발행되었다.
계룡국민학교에서 제43회 졸업생 신갑승님에게 단기 4294년 3월 27일에 발행한 상장이다.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단정하여 이를 표창한다는 내용이다.
1963.02.04~13 동안 공주문화원에서 진행된 요리강습회의 개최 안내문이다. 등록금 100원을 납부하면 매일 실습이 가능했으며 총 3개의 반으로 나뉘어 강습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직장에 근무하는 여성을 위해 야간교실도 존재했다.
藤澤一夫의 '백제석등자료'라는 글이다. 크게 '사적과 미술(1944)'라고 적힌 것을 보아 그 때 게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투고는 1943(쇼와18)년에 한 것으로 보인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사대부고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4년 2월분 월급봉투로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전용으로 제작되었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제 35회 백제문화제에 대한 기본방침과 행사개요, 행사진행일정 종목 및 세부추진계획, 공개행사장 총화행렬도, 총화행렬 세부안내 및 사전준비사항을 수록함
1962년도 공주사범학교 졸업식 당시 교부하였던 학사상황개요 안내서이다. 공주사범학교는 공주여자사범학교로 개교하여, 지금은 공주교육대학교로 개편되었는데, 학사상황개요에는 공주사범학교와 그 병설중학교의 졸업 상황을 안내하고 있다. 졸업식 식순, 학교의 연혁과…
소진철과 일본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 사이에 오간 편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문건이다. 맨 앞쪽에 소진철 교수의 집 주소가 메모지로 있고, 그가 쓴 '해양대국 대백제'라는 책이 소개되어 있다.
사범대학 발전 방안(시안)
엽서 속 선화당은 본래 충남도청 청사의 본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한 후 앵산공원으로 이건되어 백제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 엽서는 1930년대 '사적의 공주' 엽서 시리즈 중 하나로 발행된 것이다.
연도미상으로 10월 10일부터 10월 21일까지 공주로타리클럽에서 일본국 누마즈로타리클럽 회원을 맞이하는 일정표이다. 일시, 장소, 영접회원명단, 비고사항이 기재되어 있으며, 일부 빠진 내용은 윤여헌교수가 직접 자필로 메모해 두었다.
공주시 공문이다. 공주시 지명위원회 위촉계획, 공주시 지명위원회 조례, 위촉동의서 양식이 첨부되어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