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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244건
1970.02.28,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된 제7차 총회 속기록이다. 당시 총회에서 1969년도 사업실적 보고와 당해년도 예산결산 심의가 진행되었다. 나아가 1970년도 수지예산안에 대한 심의도 이뤄졌다.
1972년 7월 21일부터 1973년 2월 12일까지의 기록이다. 기증자의 개인적인 일화가 다수 차지하고 있다. 기증자는 신풍면 산정구에서 살면서 교동의 직물공장과 유구의 직물공장에서 근무하였고, 결혼을 하면서 사곡면으로 오게 되었다. 일기는 혼인을 한 시점부터…
일제강점기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 1920년대 초까지 있었던 일제의 대신궁이다. 일제는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위해 곳곳의 사적지를 공원화하면서 그곳에 신사를 건립했다. 공주에서는 공산성을 산성공원이라 격하시키고, 미국 선교사가 세운 영명학교 인근을…
공주문화원의 개원 20주년을 기념하여 공주 관내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미술실기 대회에 입선한 학생을 대상으로 심사결과를 통지하고 시상식 개최를 알리는 공문이다. 본 자료에 따르면 심사는 공주교대 재직 교수 3명이 진행했으며, 시상식은 1974.06.11 문화원…
1972년 정안국민학교는 개교50주년을 맞아 개교기념식 및 고 원종국회장의 공적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정안국민학교장의 기념사로 참석자 내빈에 대한 감사와 반백년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정안국민학교의 발전을 약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2년 8월 1일부터 14일까지 공주도서관에서 진행한 강의, 탐방에 대한 안내 문서다. 기간, 접수방법, 대상, 프로그램 일정, 참가비가 적혀있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공주지명 '박정자'에 관한 메모이다. 1974년 발행된 한국지명총람에서 공주시 반포면에 있는 지명 '박정자'와 그 명칭에 대한 유래, 충주 박씨와 밀양 박씨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공주영명중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1954년 납부금 영수증이다. 영수증에 의하면 2,3월에 걸친 2개월분의 납부금으로, 일금 칠만원을 청구하였다. 자료 하단에는 영수받은 학생의 성명이 적혀 있다.
이 기록은 윤여헌 교수가 1930년 7월 28일 매일신보에 실린 백제시대 석불 소상 발견 기사를 첨부하여 신문기사의 내용을 자필로 모사한 것이다. 메모의 본문은 다음과 같은데,

'충남 공주 제민천 제방(공주고등여자학교 부근)에 고립하여 있는 불상을 지난…
1930년대 '백제의 고도'시리즈 엽서 중 마곡사로 들어가는 배다리의 사진그림엽서이다.
1955년 영명고등학교 서무과에서 발행한 졸업비 영수증이다. 일금 칠만원을 졸업비로 청구하였으며, 자료 하단에는 영수받은 학생의 성명이 적혀 있다.
1952년 공주군 계룡면 유평리 이장이 발행한 납입고지서 및 영수증이다. 고지서에 의하면 5월 20일까지 면사무소에 당해년도 제2종토지수득세인 전기분 대지세로 일금 사백사십환을 납부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고지서 및 영수증 모두 우측에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과…
1972.06.28,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된 제31차 이사회 속기록이다. 본 자료에 따르면 생활관 신축을 위한 군에서 보급된 자재를 수령하는 것에 대한 보고와 영화상영용 자동차 매입에 관한 건이 논의되었다.
계룡국민학교재건기성회에서 단기 4291년도 계룡국민학교재건비로 일금 천삼백원을 수령하였다는 내용의 영수증이다. 자료 우측에는 납입한 진상옥님의 성명과 계룡면 유평리가 기재되어 있으며, 도장 절반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통지서와 영수증을 분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공주대학교 컴퓨터 동아리인 Soft에서 동아리원이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마음의 창이란 노트이다.
1930년대 '백제의 구도'시리즈 엽서 중 공주신사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일본에서 윤여헌 교수에게 보낸 편지로, 누가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황반변성을 앓고 있는 윤여헌 교수의 안부를 묻고 있다.
연도미상의 공주지역 유적 목록이다. 지역(이인/탄천,계룡,반포,신풍,우성,사곡,유구,정안,의당,장기,공주시), 대상(유적), 특징, 담당, 비고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