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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수가 제 26회 백제문화제를 위한 백제문화선양위원회 개최를 알리는 공문과 참석위원명단
1966.01.29, 공주문화원 회의실에서 진행한 제5차 정기 이사회 회의 속기록이다. 1965년도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결과를 돌아보고 보완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나아가 1965년도 세입세출 결산서 심의와 1966년도 사업계획서 및 세입세출 예산서 심의도…
1989년 공주신보 창간과 관련한 인사장과 영업안내, 신입사원모집 공고문이다.
1953년 탄천중학교에서 발행한 학도호국단비 영수증이다. 자료에 의하면 2학년 1반 박용중(朴容重)학생에게 학도호국단 임시비로 일금 일백환을 정히 영수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1996년 12월 8일 공주사랑시민모임에서 진행한 제2회 고적답사 문서다. 공산성과 그 주변에 관한 내용과 지도가 실려있다.
공주향토문화연구회의 1997년 5월 답사 및 월례회 알림문이다. 1장에 일자는 1997.5.22., 출발장소는 공주대학교 박물관, 답사장소: 무릉리, 일락산 마애불로 되어있다. 2장은 설문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1.공주향토문화연구 성격에 관한 생각, 연구회 사업…
소화 20년 3월 22일에 계룡공립국민학교에서 발행한 민병영님의 졸업장이다. 창씨개명한 성명(평강병영)과 생년월일도 졸업장에 기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86년 제44회 공주군 배구대회 진행을 알리는 초청장이다. 당시 배구대회는 공주고등학교에서 진행되었으며, 제8회 정석모의원쟁탈기와 겸해서 진행했다.
1910년대 초, '조선의 명소(朝鮮名所)'시리즈 엽서로 현재의 공산성 쌍수정 부근에서 금강과 공북루 방향을 바라본 모습이다.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가 있는 이곳은 충청병영의 중군영지로서, 자료 속에는 중군영 주요건물이 아직 남아있다. 특히 주출입구인 2층 규모의…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공주문화사적 관련 메모이다. 앞면에는 무령왕릉, 산성공원, 대통사지, 취리산, 수원사지와 같은 백제유적과 관련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또 뒷면에는 충청감영, 우영, 중군영, 취원루, 객사, 향옥, 사창 등 조선시대 유적이 기재되고, 그…
일제강점기 상설점포를 비롯해 노점상까지 생생한 공주의 시장풍경 엽서이다. 자료 앞쪽 쌀을 판매하는 싸전에서 짚신을 걸어 함께 판매하는 것이 이색적이다. 공주에서는 충청감영으로 약령시가 매우 성행하여 충청도 각지에서 올라온 약재상으로 붐볐던 곳이다. 지금의 봉황초등학교…
1996년 2월 3일 시행된 공주향토문화연구회의 공문이다. 지금의 교동 175-7번지(현 대우교동 아파트)에 고층 아파트 건립될 경우 공주시내 문화재 환경에 저해되는지를 묻는 공주시 도시과 및 문화관광과의 공문에 화답하는 공주향토문화연구회의 회신공문이다.…
무령왕교류큐슈시실행위원회가 공주시장 및 무령왕네트워크협의회에게 보낸 서신의 국역번역본이다. 상기 의견을 수렴하여 무령왕비 건립계획을 일시중지하고 공주를 방문해 대면 협의하기로 결정내렸다고 전하며 협의를 위한 방문일정을 요청하고 있다. 협의일시,협의장소,협의참가인수와…
1984년 이상범 이사의 부고로 인해 공석이된 공주문화원 이사직에 조택원씨를 새로운 이사로 추대되었다. 이에 공주문화원의 이사진과 운영위원의 서면결의를 받고자 발송된 서면결의 안내문과 서면결의서이다.
공주영명중고등학교 총동창회 감사로 위촉한다는 내용의 문서이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1년 12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날짜와 이름을…
젊은이들이 장래에 대한 꿈을 가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을 지향하는 사회 현실을 분석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른들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한다.
우수한 새마을지도자 위촉, 조직의 명확한 목표 설정, 새마을지도자 교육 강화, 읍면동 월례회의를 통한 사업추진, 철저한 평가 및 재충전
연도미상의 공산지에 관한 원고이다. 공산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다루고있다.
1955년 기증자가 월산국민학교에 재입학하여 학년 과정을 끝마친 후 수여받은 졸업장이다. 기증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광복과 한국전쟁이라는 큰 혼란을 겪으면서 과거에 초등교육과정을 마친 사람도 다시 교육을 받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기증자 역시 일제강점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