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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공주대학교 컴퓨터 동아리인 Soft에서 동아리원이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마음의 창이란 노트이다.
1960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가수영수증이다. 자료 가장 우측에는 단기로 날짜가 적혀있고, 영수받는 인물의 성명과 주소를 적는 란이있다. 중앙의 금액 영수란에는 에는 금액을 기재하고, 독촉수수료 및 세금을 상세히 적을 수 있는 칸을 만들었으며,…
2000.9.3. 있었던 공주향토문화연구회 답사자료집이다. 1.한국전쟁 전후 시기 공주지역 사건 연표, 2.왕촌 살구쟁이 학살사건 자료, 3.전쟁피해가 많았던 마을들 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한국전쟁시기 공주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날짜순대로 정리하여 나열, 신문기사…
1987년 자유탐구부문 대회에서 우성초등학교가 입상하여 공주시교육장으로부터 표창받은 은상 상장이다.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이다. 납부금은 110원이며, 계룡국민학교 35회 졸업생인 진경희 님 앞으로 발행되었다. 좌측에 있는 표를 통해 4,5,6월 분의 사친회비를 각각 납부하고 그 날짜를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2008년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주관으로 실시된 를 위해 윤여헌이 자필로 작성한 개회사 문안이다. 이 대회는 공주향토문화연구회 20주년을 기념하여 이루어진 행사로 당시 충남관내 있던 10여개의 향토연구회가 상호 교류하고 협력해 지역문화 진흥과 향상에 이바지할 것을…
1910년대 초, '조선의 명소(朝鮮名所)'시리즈 엽서로 현재의 공산성 쌍수정 부근에서 금강과 공북루 방향을 바라본 모습이다.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가 있는 이곳은 충청병영의 중군영지로서, 자료 속에는 중군영 주요건물이 아직 남아있다. 특히 주출입구인 2층 규모의…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로 마곡사 대광보전에 걸린 영산회상도에 대한 조사카드이다.
1964~1966년 공주문화원에서는 전국 최초로 자립된 문화원 청사 신축을 진행했다. 본 자료는 1965년 12월말에 작성된 공사비 대금 지출과 미지출 일람표이다. 유리공사와 시멘트-콘크리트 골조 공사, 미장 공사 등 공사의 세부사안이 적혀있다.
1951년 공주 계룡면에서 각 호(戶)별로 부과한 세금에 대한 영수증이다. 일금 사천 칠백삼십원은 호별세, 도세, 학교비부과금, 면추가세, 특별입학금 등 의 명목과 각 금액이 세세히 적혀 있다.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61주년 기념집 - 우생전조 인터뷰(박석구)
윤여헌 교수가 작성한 함양박씨 세계보 검토 후기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 글의 내용을 검토하여 보니 함양박씨의 문중에서 유전됨이 분명하다. 다행히 탄천면 삼각리 거주 함양인 박구식 씨의 도움으로 다음과 같은 세계보를 얻고 본첩의 작성은 승지 벼슬을 한 치순…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이다. 일금 110환을 사친회비 6월분으로 청구하였다. 계룡국민학교 39회 졸업생인 진무섭님에게 단기 4288년 1월 4일에 발행하였다.
1963.01.29, 공주문화원에서 미국 작가 제시 스튜어트를 초빙 문학강연회 개최 안내문이다.
1978년 11월 11일 토요일 공주극장에서 개최한 웅진제 안내장이다. 본 행사는 공주고등학교 학도호국단에서 주최하였으며, 공주고등학교육성회와 공주중고등학교 동창회 공주지부에서 후원을 받았다. 학교장 인사말, 식순, 공주중·고등학교 동창회 공주지부 임원진 명부,…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이다. 우측에는 보호자명과 아동명을 기재하는 항목이 있으나, 보호자명은 작성하지 않았다. 납부금은 110원인데, 소맥 몇 두 라는 항목을 지우고, 수기로 금액을 작성하여 도장을 찍었다.
정부에서 농촌관광 및 도시자본 유치 등을 통해 농촌의 기능회복과 지방경제 활성화를 도모함에 따라 무성산 지역의 산촌유학마을을 조성하여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내용을 기재한 문서이다.
충청남도교육청의 혁식담당관에서 계획한 이다. 이 문서의 구성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학교자율화 그간의 경과와 성과
2. 2009년 학교자율과 여건 및 추진방향
2-1. 학교자율화 여건
2-2. 추진방향
3. 2009년 학교자율화 중점추진계획
3-1.…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