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안 보기
기록 기록유형 문서류
전체 5334건
부여군수가 백제문화제집행위원회의 개최를 알리는 공문과 부여군에서 주관하는 백제문화제에 대한 계획확정 및 행사종목별 분담, 종목별 예산보조안을 수록함
1972.04.20에 진행할 공주문화원 제30차 이사회 개최 통지문과 참석확인서 양식이다.
1956년 공주중학교 학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10,11월 간 2개월분의 수업료 일금 오백환을 청구 및 영수하는 내용이다. 원래 인쇄된 내용은 일금 칠백오십환과 10,11,12월에 걸친 3개월분이 적혀있었는데, 밑줄을 그어 정정하였다. 공주중학교 수입원 명의로…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이다. 공주향토연구회가 일본의 공주회와 교류하면서 회장으로서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말이다. 본문에 의하면 공주향토문화연구회와 공주회와의 금후이후의 교류를 제안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원고지 : 충청지역 3개 대학 체육대회
본 자료는 기증자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81년 2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주민이 보관하고 있던 문서로, 2006년 대전지방보훈청에서 발행한 안내문이다. 안내문에 의하면,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자료제공자에게 국가유공자 훈장을 수령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공주군 계룡면 향지리의 동향인들이 모여 1961년 조직한 성실친목계에서 보관하던 영수증이다. 산성동에 위치한 양수떡집에서 모임을 위한 떡을 구매한 것을 증빙하였다. 2000년대 초반의 물가를 알 수 있다.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1975년 2월분 월급봉투이다. 기증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공주를 비롯한 청양, 보령, 논산 등에서 교직생활과 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육원 등에서 공직생활을 지냈다. 봉투 전면에서는 상단에 이름을 적고 그…
1985.11.30, 공주문화원 내 살롱에서 진행한 제52차 임시총회 회의록이다. 본 자료에 따르면 총회를 통해 1985년도 제1차 세입세출 추가경정예산안 심의가 진행되었고, 임원 임기만료에 따른 새로운 임원 선출도 이뤄졌다.
1975.06.24~30 동안 공주문화원에서 진행된 제2회 공주 관내 초중고교생 미술 실기대회 입상작 전시회 안내장이다.
갑사의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 석가모니불의 삼신불을 모시는 대적전(大寂殿)과 보물 제257호로 지정된 갑사 부도의 모습이다. 엽서 속 설명에는 계룡산 갑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는데,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높이가 약 850m이다. 봄에는 진달래,…
1956년 공주중학교 재학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사친회비 2,3월의 추가납부금으로 일금 육백환을 청구 및 영수하는 문서이다. 공주중학교사친회간사 명의로 영수하였으며, 학생의 학년과 반, 성명이 우측에 기재되어 있다. 자료 뒷면에는 사친회장의 명의로 각 학부형에게…
1969년 2월 14일 경천국민학교에서 김일환에게 수여한 졸업장이다. 내면에 성명·생년월일 등이 기재되고, 6개년 전 과정을 졸업하였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하단에 할인(割印)과 학교장의 직인이 찍혀 있다.
계룡국민학교 제52회 졸업생인 민대순님의 5학년 아동발달상황통지표이다. 교과학습발달 및 행동발달과 특별활동, 신체검사, 출결상황과 가정통신이 기재되어있다.
1930년대 '백제의 구도'시리즈 엽서 중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1999.1.9. 공주시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 창립총회에서 당시 위원장이던 윤여헌 교수가 직접 쓴 인사말이다. 윤여헌 교수의 친필메모와 인쇄문서로 구분되어 있다. 주요내용으로 위원회 발족의 배경과 의의 및 포부를 설명하고 있다.
김용철 교수가 윤여헌 교수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라는 책을 발간하며 쓴 것이다. 서신에는 자신이 공주사범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음에도 문헌정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게 된 사연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