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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문화원장이 제 23회 백제문화제 행사비 교부를 신청하는 공문과 보조금 교부신청서 및 청구서를 수록함
2001.5.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월례회 자료이다. 제목은 윤여헌 교수의 친필메모로 쓰여져 있다. (1)米芾(미불,1051~1107) (2)趙孟부(조맹부,1254~1322) (3)董其昌(동기창,1555~1636)의 연혁과 서체(글씨)의 관해 설명하는 글이다.
1895년 공주재판소로 출범한 공주지방재판소는 1910년 5월 충남도청 북측의 봉황산 자락에 자료와 같은 모습으로 남향하여 새롭게 신축했다. 서양식 건축구조로 매우 이질적이었던 법원은 1970년대 현대식 건물로 신축되기 전까지 공주의 명소로서 공주지역 학교 졸업앨범에…
1995년 보병제32사단에서 주최한 제47주년 국군의 날 기념 '1995년 호국문예 창작대회'에서 유구국민학교가 군가합창경연부문에서 장려상을 수여받은 내용의 상장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내에 있는 망일사적비를 담은 사진엽서이다. 망일사적비는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8년 명나라의 세 장수 제독 이공, 위관 임ㅈ, 유격장 남방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지금의 명국삼장비 중 하나이다. 명의 장군 이제독이 일본인 장수…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관련 강의자료이다. 문서의 서두부분에 2000년 7월 28일과 8월 1일의 교련반을 위한 강의내용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강의안에는 6.15남북공동선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특히 남북연합에 관한 내용이 담긴 제2항을 설명하고 있다.
1955년 3월 31일 공주여자중학교에서 2학년 차봉선에게 수여한 상장이다. 앞면에 학년·이름·날짜 등이 적혀있고, 품행이 단정하고 선행하여 표창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우측 상단에 학교 관인이 찍혀있다.
1957년에 발급된 정안국민학교 졸업장이다. 정안초등학교는 1922년 5월 23일에 정안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이후 정안공립심상소학교와 정안국민학교를 거쳐 정안초등학교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37년에 학생 수가 증가하여 문천간이학교가 개교하였는데, 1944년에…
1970.11.06일자로 임기가 만료되는 공주문화원 이사와 감사에 대한 유임 서면결의 안내 통지문과 결의서이다.
1993년 7월 13일 대전시민회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자료이다. 하나의 클립에 안내팜플렛과 공주시지역 회의자료가 함께 뭉쳐있다. 첫 자료는 제6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안내팜플렛으로 진행순서,좌석배치도,오찬장 구성으로 되어있다. 두번째 자료는 공주시 민주평화통일위원회…
1933년 반포공립보통학교에서 제6학년 임월수 학생에게 수여한 상장으로,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이 우등하여 상품을 수여하여 표창한다는 내용이다. 상장에 따르면 부상으로 벼루집 2개를 지급하였다.
윤여헌 교수가 자필로 작성한 메모로, 문서의 제목은 라고 적혀 있다. 메모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많아,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만든 초고에 가깝다. 메모의 크기는 혼재되어 있다(주된 메모는 18.2X25.6임). 이것은 2002년 12월 3일 공주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공주문화원 주관으로 1962.05.18 문화원 내 전 교육구청 관사에서 진행된 공주 관내 각 급 학교장 단체 모임 안내장이다. 자료 좌측면으로 참가신청서 양식이 인쇄되었다.
1928년 공주 산성정의 잠업전습소에서 남자부 제1면생의 주소와 성명을 기재한 일람표이다.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에 사는 진공식 등 16명의 주소와 성명이 기재되어있다. /…
1985년 공주군에서 주최한 군내 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공주금학국민학교 학생들이 리코더 합주부문 동상을 기록하여 받은 상장이다.
1995년 2학기 공주대학교 컴퓨터 동아리 Soft의 전시회 방명록이다.
1942년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발행한 생명보험료 영수장으로, 생명보험가입에 따라 납부한 보험료를 영수하고 있다. 보험자와 계약자, 납부방법 등 적는 인적사항란, 병합불입, 주의사항란 등을 기재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50주년 기념집 - 기억의 습작조 작품내용(역사과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