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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334건
백제문화제집행위원회위원장이 백제문화제 행사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
1798년 마곡사에서 발행된 공주이씨세보에 관한 것이다.
기증자가 공주의 충효사와 덕천군 관련 유적지에 대한 기초정보조사자료를 모아놓은 파일이다.
1972년 11월 12일에 공주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작성한 지난 50년간 공주고등학교의 모습을 담은 문서이다. 공주고등학교 동창회장 인사말, 공주공립고등보통학교, 과학관, 기숙사, 악대, 김종필 동문의 모교 방문, 도서관, 역대 교장, 동창회 조직 현황, 학교 연혁,…
소화19년(1944), 3월 임시자금규정법 및 조선총독부령에 의거하여 발행된 금5원권의 애국채권이다. 앞면에는 발행근거가 뒷면에는 5원과 3원의 경우 각 등급에 따른 내용, 주의사항 등이 기재되어 있다.
광복회의 정관으로 1965년 4월 1일에 제정하여 2010년 5월 28일 최종개정하였다.
공주문화원 후원으로 진행된 무료요리강습회의 안내문이다. 가을요리 제조법과 각종 반찬 조리법 등을 교육했다.
공주로타리클럽 주회를 2002년 4월 1일에 클럽 사무실에서 개최한다는 안내 공문이다. 일시, 장소, 회비가 적혀있다.
1961년 계룡면에서 발행한 회비납부서이다. 공주군 계룡면 유평리에 거주하는 진상옥 님에게 발행하였으며, 대한부인회비 일금 일백환과 나병예방협회비 일금 오십환을 각각 청구하였다. 회비는 3월 27일까지 계룡면사무소에 납부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전표 우측에는 발행연번,…
본 자료는 기증자가 정안중학교에서 교직생활 중에 받은 월급봉투이다. 날짜가 기입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지급날짜는 알 수 없지만, 기증자가 교직생활 중 받은 월급봉투를 모아 정리하는 과정에서 1975년도에 발급된 봉투와 함께 놓은 것으로 보아 연도를 추정할 수 있다.…
계룡국민학교에서 발행한 사친회비 영수증이다. 일금 육십환정을 사친회비 6월분으로 청구하였다. 단기 4286년 7월 14일에 발행하였으며, 발행한 담임선생님은 성명을 기재하지 않고 대신 도장을 찍었다. 계룡국민학교 33회 졸업생인 진우섭님에게로 발행된 것을 확인할 수…
1959년 공주고등학교 진우섭 학생의 물품보관증으로, 갱지 종이 뒷면에 작성하고 증빙을 위해 도장을 날인하였다. 525번에 상업교과서를 보관하였으며, 학년과 반, 번호, 성명, 날짜가 자필로 기재되어 있다.
1952년 공주군 계룡면에서 발행한 제2기분 가호세 영수증으로, 일금 사천일백삼십사원을 영수하였다. 전표 우측에는 발행연번, 리(里), 납세자명을 기재하는 칸이 있다. 가옥세로 일금 이천육칠원, 공부가세로 일금 이천육칠원이 각각 청구되었다.
마곡사 기록자료 조사카드로 명부전에 소장된 정토종 포교당 시왕도 제2초강대왕에 관한 것이다.
1996년 5월에 있었던 공주향토문화연구회 안내장이다. 행선지는 6.25 인민군 충남사령부 주둔지(논산 가야곡면)이며, 답사일은 1996년 5월 2일이다. 안내장에는 일시, 행선지, 출발, 회식안내사항이 있다. 또 공지사항으로 1.'웅진문화' 9집 원고모집, 5.2.…
공주문화원에서 1988년도 제2차 세입세출 추가경정예산안을 상정하고 심의 가부를 결정하기 위해 발송한 서면결의문과 서면결의 투표용지이다.
이케노보 야스코 관련 간담회 질의 사항이다. 1.공주와 일본과의 교류현황 소개 2.백제시대의 공주 소개와 질의 사항(예), 부탁사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질의사항은 1.공주방문에 대한 개인적 소감 2.일본의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정치활동을 하고…
공주교육청에서 발행하고 유구국민학교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학지도록이다. 맨 앞 페이지에는 유구국교만의 특색과 재학생 및 학급수가 기재되어 있다. 평가 기준과 점수가 매겨져 있고, 지도 현황 및 조언 내용이 수기로 기록되어 있다.
공주영명중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에게 발행한 영수증으로, 일금 일십팔만원을 청구하고 있다. 청구 상세 내용으로는 입학금, 수업료 2개월분, 사친회비, 호국단비, 시설수리비, 책상대금, 입회비, 학급비, 교과서대금 등의 금액이 각각 적혀있다. 발행처는…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