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수정은 1911년 공주를 방문한 독일인 신부 베버가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공산성에서 유명한 장소이다. 그는 "우묵땅에는 울타리를 두른 비각이 있었고, 그 안에는 큰 거북 등에 비석이 서 있었다"라는 기록을 통해 쌍수정 사적비도 언급했다. 본 자료에서는 쌍수정 누각에…
일제강점기 제민천 하류의 버드나무 군락이 있는 곳의 풍경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제민천 중간에 서있는 3명의 인물과 제민천 제방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멀리 유교(柳橋)가 보이는데, 현 중동 큰 사거리와 연결된 교촌교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충남도청 앞 관아대로에서 동편의 앵산공원을 바라보고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앵산공원에는 현재 유관순 열사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공원 아래 대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조선식산은행 공주지점이 위치해 있으며, 길 양쪽으로 짚신과 꽃신을 파는 신발가게, 호미 등…
일제강점기 공산성 공북루 부근에 설치된 금강 목교의 파노라마 사진그림엽서이다. 본 자료는 500007856의 복본이다.
1910년대 후반경 공산성 공북루 앞 산성나루 부근에서 바라본 금강의 모습이다. 한 사내가 낚시하는 모습과 강 중간에 떠있는 나룻배, 멀리 목교와 함께 연미산도 보인다.
일제강점기 공산성 공북루 부근에 설치된 금강 목교의 파노라마 사진그림엽서이다.
지금의 공주우체국 자리에 있던 공주우편국의 모습이다. 본래 지금의 중동 큰 사거리와 작은 사거리 사이 차부 뒤편에 있었는데, 1913년 12월 반죽동으로 이전했다. 엽서 속 모습은 반죽동으로 청사를 이전한 직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사다리를 타고 전봇대에 오른 2명의…
일제강점기 현재의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과 배다리의 모습이다. 멀리 쌍신동의 정안천 제방과 연미산 능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교가 가설된 1920년부터 금강교가 가설되기 전인 1933년 이전의 모습으로 보인다.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공주우편국 앞에서 서쪽의 봉황산을 바라보고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도청과 가깝고 근처에 법원이나 경찰서, 충청남도금융조합연합회관 등 주요기관이 있어 우편국 앞은 인파로 붐볐다. 한편 1920년대 조선노동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범사회적인 노동운동이 발생했을 때,…
일제강점기 계룡산 연천봉 자락에 위치한 연천사(蓮天寺)로 지금의 등운암이다. 조선시대에는 정씨(鄭氏)의 왕기(王氣)를 누른다는 뜻의 압정사(壓鄭寺)라 불렸다. 이 사진그림엽서는 계룡산의 절승 시리즈 엽서 중 하나인데, 엽서 속 인물은 본 사진을 촬영 후 후편집을 통해…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는 백제 웅진도읍기 산성이 축조되었을 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루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은 식민지정책에 따라 사적지를 공원화 하여 '산성공원'이라 불리었다. 엽서의 상단에 68년 간 백제의 왕성이었다는 사실과 진남루의 규모가 붉은 글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