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는 백제 웅진도읍기 산성이 축조되었을 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루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은 식민지정책에 따라 사적지를 공원화 하여 '산성공원'이라 불리었다. 본 자료는 500007853과 유사한 자료로 보인다.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8년 공주에 주둔하며 공주사람을 보호하던 명나라 세 장수 제독 이공과 위관 임제, 유격장 남방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비문에는 명의 장군 이제독이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공주 금강을 가로지르는 목교가 1920년 붕괴된 이후, 동년 곧바로 대체 다리로 배다리를 가설했다. 배 26척을 묶고 그 위에 상판을 올려 사람과 물산이 오가도록 했는데, 길이가 175m이고 폭은 3m였다. 하루에 오전과 오후 2시간씩 연결된 배를 풀어 나룻배가 통과할…
일제강점기 공산성 내 명국삼장비를 비각 전경사진에 후편집을 가미하여 비석을 합성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는 석가불과 약사불, 아미타불이 모셔진 대웅보전과 비로자나불이 모셔진 대광보전이 존재한다. 대광보전 마당에는 라마교 양식의 풍마동이 올려진 5층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현재는 일제강점기 때보다 탑의 위치가 희지천 쪽으로 남진했음을 알 수 있다.
1910년대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서 공주시가지를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봉황산 아래 충남도청에서 동서방향으로 난 욱정거리(現 감영길)와 남북으로 흐르는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충남행정의 수부(首府)답게 충남도청과 공주지방재판소(現 공주지방법원), 헌병수비대,…
지금의 공주우체국 자리에 있던 공주우편국의 모습이다. 본래 지금의 중동 큰 사거리와 작은 사거리 사이 차부 뒤편에 있었는데, 1913년 12월 반죽동으로 이전했다. 엽서 속 모습은 반죽동으로 청사를 이전한 직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사다리를 타고 전봇대에 오른 2명의…
일제강점기 공산성 공북루 부근에 설치된 금강 목교의 파노라마 사진그림엽서이다.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서 바라본 1910년대 전반기 충남도청 부근 시가지이다. 공주 봉황산 아래 조선시대에 조성된 충청감영과 공주목을 잇는 관아대로는 충남도청과 공주군청을 이어주는 도로로 변화했다. 그리고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대로 주변에는 상가와 여관 등…
1910년대 후반경 공산성 공북루 앞 산성나루 부근에서 바라본 금강의 모습이다. 한 사내가 낚시하는 모습과 강 중간에 떠있는 나룻배, 멀리 목교와 함께 연미산도 보인다.
1920년대 초반 제민천 하류에 있던 버드나무 군락지의 모습이다. 멀리 유교(柳橋)가 보이는데, 현 중동 큰 사거리와 연결된 교촌교로 추정된다.